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낙화落花

영국의 시 축제들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여성의 눈으로 희망 찾기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의 의지와 행운이 함께한「독립선언서」 작성 과정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영문 「3·1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담긴 이상과 현실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SNS는 눈, 유튜브 문학은?

“깨끗한 것이 선악보다 낫다”

자동차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에서

일출(日出), 빛과 색 이야기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모든 순간들이 한국문학이고 ≪현대문학≫이다

하필이면

김점순 어머니

가면 오리, 오면 십리

티브이를 보다가,뼈 펴는 소리 포스터

행자가 사라졌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불꽃놀이

「동시대 문학의 시간착오와 불안」에 부쳐

운이 좋은 이유 작가, 같이 아픈 사람들이 주는 큰 위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밀하게, 간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LOVE NEVER FAILS

“차(茶)란 먼저 형태를 만들고 마음을 담는거야”

역사가 인류에 대해 말해주는 것

다르게 또 새롭게, 문학 안에서 전진하는 페미니즘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써나간 고통의 기록”

터키인들도 ‘타는 목마름’을 아는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19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동화

불꽃놀이

최명란 ㅣ 시인, 1963년생 동시집 『수박씨』 『바다가 海海 웃네』, 『꽃 동시 그림책』 『우리는 분명 연결된 거다』 등

뽀드득 뽀드득 과자 부숴먹는 소리가 들립니다. 아침 일곱 시, 할머니가 과자 먹는 소리입니다. 진이에게는 그 소리가 알람입니다. 아침밥 준비가 조금만 늦어도 할머니는 과자를 세게 부숴먹습니다. 배고프니까 어서 밥 달라는 말입니다.
할머니는 일곱 살입니다. 7년 전, 오토바이 사고로 기억을 잃고 다시 나이를 먹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래그래, 다 잊어먹고 사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지. 안 잊어먹고 어찌 살겠나.” 엄마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할머니 밥그릇에 수북하게 밥을 담습니다.
할머니는 사고 직후에 자기가 누구인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런 기억을 하지 못했습니다. 1년 넘게 병원에 다니고 나서야 차츰 사람을 알아보고 소소한 집안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할머니에게 자꾸 일을 시킵니다. 세탁기로 빨래하는 일과 설거지하고 청소하는 일이 일곱 살 할머니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 정도라도 움직여야 기억 회복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는 걸 엄마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엄마가 시키는 대로 일을 잘 하는 편입니다. 그러다가 어떤 날은 게으름을 피웁니다. 개수대에 씻을 그릇을 가득 쌓아 놓고는 과자만 먹고 있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엄마의 목소리가 커집니다.
“설거지 안 해?”
“안 해.”
“그럼 알아서 해. 그 대신 밥 담을 그릇이 없으니까 굶어야 해.”
“…….”
엄마가 일부러 차가운 얼굴을 합니다. 그러면 할머니는 삐쭉 내밀고 있던 입술을 거두고 어느새 거뜬히 설거지를 해냅니다.
진이는 정신연령이 자기보다 낮은 할머니가 너무 싫습니다. 밥 먹을 때 가끔 다투기도 합니다. 맛있는 반찬이 있으면 할머니가 자꾸 욕심을 부리기 때문입니다. 진이가 학교에서 늦게 돌아오자 엄마가 집에 없었습니다. 식탁에는 진이와 할머니가 좋아하는 김과 계란찜이 표고버섯나물과 함께 차려져 있었습니다. 수저 옆에는 엄마가 써 놓은 쪽지도 있었습니다.
‘진아. 엄마는 오늘 촉석루 행사가 있어서 서둘러 나간다. 계란찜 해놨으니 할머니랑 싸우지 말고 밥 맛있게 먹어.’
진이는 배가 고파 얼른 손을 씻었습니다. 그런데 식탁에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계란찜을 젓가락으로 절반 딱 나누어 선을 그었습니다. 똑같이 나눠먹자는 뜻입니다. 진이는 그런 할머니가 싫다 못해 미워 죽을 지경입니다. 처음에 할머니는 계란찜을 앞쪽에서부터 차례차례 조금씩 먹어나갔습니다. 그러다가 나물은 먹지도 않고 한 손으로 김을, 또 한 손으로는 계란찜을 빠르게 먹어댔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야!”
갑자기 진이가 소리를 지르면서 들고 있던 숟가락으로 할머니의 숟가락을 세게 내리쳤습니다. 할머니가 진이 몰래 계란찜을 숟가락 끝으로 굴 파듯이 파먹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진이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나 다시는 할머니랑 밥 같이 안 먹을래. 정말 치사해 죽겠어.”
“진아! 할머니는 진이보다 어리니까 동생 돌보듯이 해야 하는 거 알지?”
“며칠 전에 피자 시켜 먹을 때도 맛있는 토핑만 걷어먹었단 말이야.”
“그래그래, 진이가 하는 말 다 알아. 나중에 집에 가면 이야기하자.”

할머니와 싸운 이야기에도 엄마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진이를 곱게 타이르며 다독여주었습니다. 진이는 그래도 화가 풀리지 않아 더 이상 밥을 먹지도 않고 문을 쾅 닫고는 피아노 학원으로 가버렸습니다.
학원의 한 평짜리 칸막이 방에서 진이는 늦도록 피아노 연습을 했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할머니가 미워서 집에 가기 싫었습니다. 그때 살며시 연습실 문이 열렸습니다. 피아노 선생님인 줄 알고 얼른 고개를 돌리자 보기도 싫은 할머니가 얼굴을 들이밀었습니다.
“이거…….”
할머니가 학원에 찾아온 것만 해도 창피해 죽겠는데 검은 비닐봉지까지 덜렁덜렁 들고 와서 내밀었습니다. 진이는 얼른 할머니를 떠밀 듯 내보내고 문을 닫았습니다. 봉지 속에는 삶은 계란 두 개와 은박지에 싼 소금이 들어 있었습니다. 할머니가 더 미워 쓰레기통에 던져버렸습니다.
엄마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찬불가를 부르는 ‘불자 가수’입니다. 가끔 늦은 시간에 공연이 있는 날은 밤늦게 돌아옵니다. 엄마가 술이라도 한잔 마시고 오는 날엔 꼭 ‘만다라’ 노래를 부르며 현관에 들어섭니다. 그럴 때 엄마의 볼은 눈물로 얼룩져 있고 핸드백은 손끝에 축 늘어져 있습니다. 수없이 반복하는 마지막 소절, ‘떠나지 못하는 내 몸의 번뇌를 씻어내 주세요’는 일곱 살 할머니도 알고 따라 할 정도입니다.


그날 새벽, 진이가 자다가 일어나 화장실 가려고 나오자 엄마가 베란다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엄마, 안 자고 거기서 뭐해요?”
“응, 안개 본다고…….”

(후략)

 

*본 원고의 전문은 대산문화 <봄호>를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