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낙화落花

영국의 시 축제들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여성의 눈으로 희망 찾기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의 의지와 행운이 함께한「독립선언서」 작성 과정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영문 「3·1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담긴 이상과 현실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SNS는 눈, 유튜브 문학은?

“깨끗한 것이 선악보다 낫다”

자동차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에서

일출(日出), 빛과 색 이야기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모든 순간들이 한국문학이고 ≪현대문학≫이다

하필이면

김점순 어머니

가면 오리, 오면 십리

티브이를 보다가,뼈 펴는 소리 포스터

행자가 사라졌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불꽃놀이

「동시대 문학의 시간착오와 불안」에 부쳐

운이 좋은 이유 작가, 같이 아픈 사람들이 주는 큰 위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밀하게, 간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LOVE NEVER FAILS

“차(茶)란 먼저 형태를 만들고 마음을 담는거야”

역사가 인류에 대해 말해주는 것

다르게 또 새롭게, 문학 안에서 전진하는 페미니즘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써나간 고통의 기록”

터키인들도 ‘타는 목마름’을 아는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19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문학현장

LOVE NEVER FAILS

- 수상자 영국 문학기행

글 김연덕 ㅣ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사창작과 2학년. 제17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문 수상자. 1995년생 시 「재와 사랑의 미래」 등

편집자 주 ㅣ 대산대학문학상 수상자들은 지난 2월 8일부터 17일까지 대학문학상 부상으로 영국문학기행을 다녀왔다. 이들은 런던의 주요 명소와 박물관을 탐방하고 옥스퍼드대 한국학과 학생들과 만남을 가졌으며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소설가 줄리언 반스와의 대담도 진행하였다. 이번 호에 문학기행 후기를 싣고 줄리언 반스와의 대담은 다음 호 대산초대석을 통해 공개한다.

나는 전혀 부지런한 사람이 아니지만, 런던에서 머무는 내내 새벽같이 일어나곤 했다. 첫 공기를 마시며 가만히 테라스에 앉아 푸르게 잠긴 도시를 바라보곤 했다. 기묘하게 솟은 나뭇가지와 굳건한 흰 건물들, 물과 빛과 어둠이 뒤섞인 잔디. 울타리. 조용한 그림자. 성 같기도 꿈같기도 폐허 같기도 한 이곳에 아침이 조금씩 찾아오는 모습을 지켜보며 뻑뻑한 문고리를 들어 올리며 추워 발을 모았다. 그렇게 벽돌이, 계단이, 나무가, 도로와 철제 울타리가 순서대로 선명해지는 것을 느끼면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났을 때 그리고 내가 간절히 원할 때 끄고 켤 수 있는 스위치를 하나 갖게 된 것 같았고, 그것이 생각보다 손에 꽉 쥐어졌고, 나를 메마르게 하고 두렵게 하던 많은 일들을 잊을 수 있었다. 따뜻했고 그리웠다. 맨발로 테라스에 나가 무언가 기다렸듯, 무언가 흘려보냈듯 작은 스위치들을 기록해둔다.

우리는 긴 초 사이로 서로의 얼굴을 건너다보며 저녁을 먹었다.
우리는 누군가 낮달을 발견하면 고개를 젖혔고
우리는 집집마다 다르게 달린 문고리와 문패를 들여다봤다.
우리는 이층버스를 타고 계단을 올랐다 다시 내려왔다.
우리는 맑은 날은 맑은 날대로 흐린 날은 흐린 날대로 좋다고 했다.
우리는 커다란 박물관 입구에서 첫 농담을 나누었고
차갑고 조용한 그리스 두상들 사이를 걸었다.

버지니아 울프 생가 앞에 선 수상자들
 영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 줄리언 반스와의 인터뷰   


나는 로마의 음악(Roman music)을 로맨스 음악(Romance music)으로 잘못 읽었다.
나는 조각상과 조각상 앞의 사람들을 그렸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시대를 한발 늦게 걷다가
가끔 앉았다.
우리는 들어가도 들어가도 끝이 없는 미술관에서 서로에게 다가가 장난쳤다.
우리는 빗물에 젖은 사자상을 보았다.
우리는 보라색 교복과 하늘색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았다.
몇몇 아이들이 이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나는 탄성을 지었다.
우리는 내리는 비를 그대로 맞았다.
우리는 계란과 무순만 들어간 단순한 샌드위치를 먹었다.
나는 숙소에서 지하철역까지의 방향을 계속 헷갈려 했다.
나는 붉은 전화박스 안에 한번 들어가보고 싶었다.
나는 다운트북스 이층에서 야한 시집을 발견했다.
나는 마켓에서 하트 모양 귀걸이를 샀다.
나에게 그것을 판 사람이 “밸런타인데이에 하고 다녀” 말했다.
그 말을 우리 중 몇 사람에게 전해주었다.
우리는 도자기나 커피나 유리를 싸기 위해 시내에서 신문을 몇 부씩 챙겼다.
우리는 피카딜리 라인을 자주 탔다.
우리는 때때로 한국의 날씨를 확인했다.
우리는 아직 피지 않은 수선화를 파로 오해했다.
우리는 따뜻한 스콘을 반으로 갈랐다.
우리는 걷는 속도가 다 달랐다.
우리는 먹는 속도도 다 달랐다.
우리는 손이 길고 아름다운 작가를 만났다.
우리는 오래된 극장에 들어가 천국을 뜻한다는 푸른 천장을 올려다봤다.
우리는 경청했다.
우리는 식재료가 빽빽하게 늘어선 향신료 가게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불 피운 흔적이 남아 있는 난로를 신기해했고
나는 액자와 액자 속 사람들을 창밖 사람들인 것처럼 구경했다.
우리는 강아지 동상과 기사 동상을 지나쳤다.
우리는 바람 부는 템스강을 건넜다.
나는 애프터눈티 가게 건너편의 예수상을 확대해 찍었다.
우리는 동트기 전에 숙소에서 나왔고
우리는 옥스퍼드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잠시 멍하니 있었다.
우리는 백합 문장이 새겨진 우체통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
우리는 타오르는 봉헌초를 보았다.
나는 내 시에 쓰인 달 기호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폭발하는 시 후반부에 관한 질문도 받았다.
한국 시를 영어로 번역하는 친구와 서로의 가족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둥글고 높은 천장 아래서 홍차를 마셨다.
우리는 교회 옥상에 올라 펄럭이는 무지개 깃발을 보았다.
옥스퍼드 아지트의 커튼 무늬는 자주색 꽃이었다.
우리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유리가 반짝이다 어두워지다 다시 반짝이는 순간을 일일이 알아채지는 못했다.
우리는 교수만 잔디를 밟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웃었다.
우리는 핸드폰 플래시를 켜고 예배당의 비밀을 곳곳 밝혀 보았다.

▲ 옥스퍼드 대학교 한국학과 학생들과 허트포드 칼리지에서    


우리는 조심스러웠다.
나는 만화경을 들고 친구의 얼굴과 정원의 건축물을 번갈아 돌려보았다.
나는 공룡 뼈대 앞에 다리를 뻗고 앉았다.
우리는 청록색 틴케이스에 담긴 차를 열심히 골랐다.
우리는 횡단보도에 서서 비틀스를 떠올렸다.
우리는 잠들듯 천천히 돌아가는 관람차에서 공사 중인 빅벤을 봤다.
나는 타워브리지 난간에 기대선 친구들을 그렸고
누군가 그런 나를 찍어주었다.
나는 7파운드를 주고 꽃집에서 제일 크고 흰 장미를 샀다.
나는 그것을 종이로만 싸달라고 했다.
그것이
사랑에 더 가깝다고 느꼈다.
그리고
어쩌면 그래서

소연.
다은.
은서.
혜리 선생님.
지민 선생님.

마지막 날 아침 온통 흰 색인 동네에서 길을 잃어 구글맵을 켰다.
길을 잃은 곳에서 볼드체로 적힌 낙서를 보았다.

LOVE NEVER FAILS

촌스러워도 믿고 싶어지는 것들을 정말 믿게 해주어서 고마워요. 나는 이제 이것을 매일 봅니다. 내내 푸르게 잠긴 내 아름다운 도시, 내 아름다운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