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대산문화 표지

낙화落花

영국의 시 축제들

시인은 청진기, 아픔을 듣고 붉은 꽃을 처방한다

여성의 눈으로 희망 찾기

특집을 기획하며 민족의 의지와 행운이 함께한「독립선언서」 작성 과정 한민족의 독립의지를 국제사회에 알린 영문 「3·1독립선언서」 「독립선언서」에서 배제된 여성들의 「대한독립여자선언서」 「독립선언서」에 담긴 이상과 현실

이야기꾼의 운명, 이야기의 힘

SNS는 눈, 유튜브 문학은?

“깨끗한 것이 선악보다 낫다”

자동차

고리키세계문학연구소에서

일출(日出), 빛과 색 이야기

그래 살아봐야지 너도 나도 공이 되어 쓰러지는 법이 없는 둥근 공처럼

모든 순간들이 한국문학이고 ≪현대문학≫이다

하필이면

김점순 어머니

가면 오리, 오면 십리

티브이를 보다가,뼈 펴는 소리 포스터

행자가 사라졌다! 눈과 사람과 눈사람

불꽃놀이

「동시대 문학의 시간착오와 불안」에 부쳐

운이 좋은 이유 작가, 같이 아픈 사람들이 주는 큰 위안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밀하게, 간결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LOVE NEVER FAILS

“차(茶)란 먼저 형태를 만들고 마음을 담는거야”

역사가 인류에 대해 말해주는 것

다르게 또 새롭게, 문학 안에서 전진하는 페미니즘

통째로 얼지 않으려고

“죽음의 그림자 가운데 써나간 고통의 기록”

터키인들도 ‘타는 목마름’을 아는가!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대산창작기금,대산청소년문학상 등

2019 대산창작기금 및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지원 공모 등

번역서 리뷰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영역 황정은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글 서홍원 ㅣ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962년생
저서 『문학과 의학』(공저) 『밀턴의 이해』(공저)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공저) 『위대한 유산』(공저) 등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 영역 황정은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

글 서홍원 ㅣ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1962년생 저서 『문학과 의학』(공저) 『밀턴의 이해』(공저) 『영미 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공저) 『위대한 유산』(공저) 등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번역본의 힘을 입어 2016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한 후 번역의 반역성에 대한 논란이 또다시 일었다. 번역자 데보라 스미스가 저지른 여러 가지 ‘만행’을 지적하며 분개하는 모습과 그렇게 번역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맨부커상을 수상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반론을 보면서 좋은 번역이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원작에 충실하면서 언어의 아름다움을 살릴 수 있어야 하며, 기왕이면 한국의 정서도 성공적으로 ‘저쪽’으로 전달하면 더없이 만족하겠다. 그러나 『채식주의자』의 경우에서 볼 수 있다시피 번역에 대한 평가는 쉽게 내려질 수 없다. 다른 누군가가 한강의 원작을 더 충실하게, 정서까지도 잘 번역했더라면 과연 영미 독자층의 호응을 끌어낼 수 있었겠는가? 스미스가 원작을 훼손해가면서 번역하지 않았더라면 과연 이 소설이 세계적인 문학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그러나 상을 받게 도와주는 것이 번역의 본질적인 역할인가? 이런 질문, 과제 등을 놓고 번역에 대해 고민하는 가운데 에밀리 예원(Emily Yae Won)이 번역한 황정은의 I’ll Go On(『계속해보겠습니다』)을 접하게 되었다. 원작부터 살펴보면, 어린 나이에 아빠의 끔찍한 사고를 맞고, 남편을 잃은 후 삶의 의욕을 상실한 엄마까지도 돌봐야 하는 어린 자매 소라와 나나, 엄마 대신 그들을 돌보게 된 이웃집 아줌마의 아들 나기의 서사를 통해 그들의 일상이 잔잔하게 전달된다. 공장에서 일어난 아빠의 끔찍한 사고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적(詩的) 정의’가 이 세상에 없음을, 문학의 세계에서조차도 없음을 상징한다. 세 화자는 비통함이나 비관도 아닌, 무기력함으로 삶을 버텨내는 듯한 인상이 든다. 전장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도 씩씩하게 또 다른 전장으로 향하는 브레히트의 억척어멈과는 대조되면서도 세상일의 ‘어쩔 수 없음’을 담아낸다는 의미에서 묘하게 동질적인 모습이다.
이런 면에서 『계속하겠습니다』는 산업혁명 이후 소외된 소시민의 보편적인 정서를 담아낸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한강의 『채식주의자』보다는 번역이 용이할 수 있겠다는 기대가 든다. 실제로 에밀리 예원의 번역은 황정은의 간결하고 무덤덤하면서도 무기력한 화자들의 목소리를 잘 살리고 있다. 특히 이 번역의 강점은 표현의 간결한 아름다움이다.
엄마 애자가 태풍 속에서 아빠와 걸었던 장면을 회상하는 순간이 원문에서는 “그 바람 속을 둘이서, 옷자락 한 번 날리지 않고 걸었단다. 바로 눈앞에서 부러진 가로수를 넘기도 하면서 우산을 쓰고 계속 걸었단다”로 표현되었다. 이를 “The two of us, though, we walked clean through it, our clothes barely ruffled. On we went ― a single umbrella between us ― stepping over splintered boughs and entire roadside trees that split down the middle, some right in front of our eyes”로 번역하듯, 에밀리 예원은 애자의 비현실적이고 과장된 표현을 더 살려내고 있다. 단순하게 옷자락이 날리지 않은 것이 아니라 태풍을 말끔히 뚫고 갔음을, 둘이서 하나의 우산을 썼음을(그래서 그 둘의 힘으로 이런 기적을 이뤄낸 것처럼), 부러진 가지와 세로로 쩍 갈라진 가로수의 잔재가 태풍의 난폭함을 보여주고 있음에도 그들은 멀쩡했음을 번역본이 더 생생하게, 아름답게 표현한다.
애자가 남편의 사고를 이야기하는 장면에는 역자의 창의성이 드러난다. 사고를 낸 기계를 묘사하며 애자는 크고 작은 톱니바퀴가 서로 맞물려서 짐승처럼 난폭한 것이 되었다는 인상을 남기는데, 여기서 키워드는 톱니의 ‘맞물림’이다. 애자는 이 묘사 초반에 맞물림 대신 ‘물림’이라는 말을 쓰면서 톱니의 맞물림과 남편을 물어서 먹어버린 기계의 짐승 같은 모습을 암시한다. 이런 언어유희는 ‘맞물림’과 ‘물림’ 사이의 복합적 의미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번역에서 살려내기가 불가능에 가까운데, 역자는 ‘물림’을 ‘snarled’로 번역하면서 맞물림(snarled는 망이나 가시 같은 것에 엉켜짐을 의미하기도 하고 짐승의 으르렁대는 소리를 의미하기도 한다)과 기계의 짐승 같은 폭력성을 중의적으로 처리했다. 미국의 계관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Out, Out?”에서도 snarl이라는 단어가 나오는데, 전기톱이 마치 살아있는 짐승처럼 어린 소년의 손을 자르기 전에 내던 심상치 않은 으르렁거림이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수다가 번역본에 등장하기도 한다. 화자가 바뀌면서 나나가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나나는 소라처럼 자신의 이름에 대한 해석을 제공한다. 이때 한국어의 아리따울 ‘나(娜)’와 자신을 말하는 ‘나’의 언어적 유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지 궁금했다. “어쨌거나 나는 나라고 말해도 나. 나나라고 말해도 나.” 이 간결한 문장을 역자는 문단 단위의 설명으로 치환했다. “Still, the symmetry of it does resonate, and na being a homonym for na, that is, I, there’s of course an extra phonetic echo, so that Nana and na start to merge, become interchangeable. Whether I say Nana or na, I mean myself.” 이 문단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원문에 해당하는 내용이 나온다. 그 앞의 설명이 없었더라면 이 문장은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번역자의 수다조차도 좋게 보이는 이유는, 겉으로는 무뚝뚝한 나나가 소라와는 달리 속 수다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소라는 자신의 속생각을 전할 때도 필요 이상의 자신의 의견을 담지 않는다. 반대로 나나는 자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것들에 대한 해석을 길게 늘어뜨린다. 따라서 위의 수다스런 번역이 나나의 이야기와 조화를 이룬다. 이것이 역자의 의도적인 선택일까? 만약 그렇다면 대단하다.
그래서 더 기대를 해보았으나 언어, 문화, 역사의 장벽 때문에 번역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황정은 작가가 이 소설을 쓰는 중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그 사건이 지울 수 없는 흔적을 작품에 남겼음을 작가 자신이 토로한 바 있다. 천재(天災)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인재(人災)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천재 같은 일들이 주기적으로 닥치는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 자매와 ‘오빠’의 무기력함이 이 소설의 기조를 이룬다. 그런 면에서 ‘계속해보겠습니다’라는 제목은 길고 아쉬운 여운을 남긴다. 우리의 슬픈 역사를 모른다면 이 정서는 보편성에 묻힐 것이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게도.
평을 계속해보겠다. “계속해보겠습니다”는 나나의 이야기가 계속됨을 알리는 말이므로 “I’ll go on”으로 번역해도 무난하지만, 나나의 이야기 마지막에 나오는 “계속해보겠습니다”는 ‘힘들지만, 허락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의 암묵적인 조건 속에서 삶을 헤쳐 나가려는 의지가 담긴 말이다. 마지막에는 “I will go on”으로, 의지를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엄마 ‘애자’는 이름 그대로 ‘사랑하는 자’이기도 하지만 ‘장애인’의 비속어이기도 한 것을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놓칠 수 없을 것이다. 당연히 번역은 이를 살려낼 수 없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역자가 틈틈이 수다를 떨어줬으니 ‘애자’에 대한 설명도 수다스럽게 해줬더라면…….
마지막으로, 번역이 심하게 흔들린 부분을 지적해본다. 나나는 자기 자신을 ‘나나’로 표현할 때가 많다. ‘나’와 ‘나나’가 다르지 않음을 처음에 말했기 때문일까? ‘나나’라고 표현해도 1인칭 화자의 시점에서 이야기가 서술됨은 분명하다. 불행히도 번역에서는 1인칭과 3인칭이 혼용되어 혼란을 야기한다. 특히 나나의 첫 이야기 마지막에 모세의 폭력을 이야기할 때 그 혼란이 극대화된다. 원문에는 심지어 ‘나나’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번역에서는 나나를 3인칭 시점으로 묘사하면서, 그러면서도 1인칭 시점과 교차되기도 한다. 혹시라도 개정판이 나온다면 이유 없는 3인칭은 없애고 원문의 1인칭을 고수해주기 바란다.
잠시의 혼란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원작 못지않게 즐겁게(화자 소·나·기의 힘겨움이 즐거울 수 있다면) 번역을 읽었다. 역자는 영어에 대한 감각, 이야기꾼으로서의 감각을 모두 갖췄다. 앞으로도 두 작가, 역자의 활약을 기대한다.


※ 『I’ll Go On 계속해보겠습니다』는 재단의 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을 받아 정예원의 번역으로 2018년 영국 틸티드액시스에서 발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