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산문화

청靑노루

열망했으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식민지 청년의 꿈

‘영원토록 변방인’, ‘영원토록 구원인’ 시의 사랑법

인문학교육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자신의 악마들에게 형태를 부여해서 축사를 만든 작가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 ①우리 공동체의 테두리와 깊이 ②언제든 다시 광장으로 ③국경을 지우기, 이주민을 환대하기 ④소수자, 현장, 연결

네, 나는 남한 작가입니다

무서움과 다정함 그리고 불쌍함

귀객(鬼客), 혹은 생의 이면(裏面)에 들린 자

성희는 몰랐겠지만

나의 해방촌

앞 강물, 뒷 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가자고

그저 지참금 때문에

의연한 연꽃의 작가

시대와 불화를 얘기하고 고달픈 삶을 노래하다

1920~30년대 경성의 거리와 음식에 대한 몇 가지 소묘

①다시 봄이 돌아오니,겨울바다 ②분실,고래

①正午에 우리가 ②아무의 목소리

김포인과 꿩의 약속

첫번째｜먼 우레처럼, 두번째｜열등감에 대하여 세번째｜너무 빨리 온 미래 네번째｜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는 것

정치의 계절에 문학은 꽃 피는가

“내가 가장 잘한 일 중 하나가 그때 소설을 포기한 것”

무진, 2008년 한국

나의 다음은 국어사전 속에 있다

창의적 배반일까, 무모한 이탈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소중한 것이 있어

‘주의’를 거부한 소외된 약자들의 목소리

몽골어 운율에 실은 한국의 정조와 정신주의

문화적 차이를 넘어 ‘인간의 존엄성’을 옮기다

대산창작기금,한국문학 번역연구출판 지원 등

2017 외국문학 번역지원 공모 등

나의데뷔작

성희는 몰랐겠지만

글 이기호 ㅣ 소설가,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1972년생
소설 『최순덕 성령충만기』『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사과는 잘해요』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 등

성희는 몰랐겠지만

1.
성희는 몰랐겠지만 그해, 그러니까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에 나도 작품을 접수했다. 어디 동아일보뿐이겠는 가. 경향신문도 내고, 한국일보도 냈다. 모두 1998년 봄에서부터 가을 사이에 쓴 소설이었다. 소설 한 편 한 편을 서류봉투에 넣 으면서, 음 그래도 동아일보가 상금이 제일 많으니까 여기에 가 장 죽이는 걸 보내야지, 혼자 고개를 끄덕거렸다. 훗훗, 다 죽었 어. 뭐 그런 말도 중얼거렸던 것 같다. 물론 그 알 수 없는 자신 감엔 나름대로 근거가 있었다. 1998년이라면 내가 아무 일도 안 하고 오로지 소설에만 집중했던 유일한 한 해였다. 경제적인 문 제 때문이기도 했지만 대학원도 휴학했겠다, 거처도 용인 굴암산 아래 선생님의 작업실로 옮겼겠다, 애인도 없겠다, 할 수 있는 것 이라곤 소설 쓰는 것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선생님의 작업실은 TV도 안 나오고, 라디오도 FM은 잘 잡히지 않는 곳이었다). 늦 은 오후에 일어나서 다시 이른 아침에 잠들 때까지, 나는 오로지 책상에 앉아 소설만 썼다. 가끔 주변 논과 밭으로 산책하러 나가 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음, 아무래도 필명을 쓰는 게 낫겠지. 작가 이름치곤 너무 평범하지 않나? 무슨 수학 기호도 아니고……’ 같은 생각을 하면서 혼자 심각해지기도 했다. 당선소감도 ‘버전1, 버전2, 버전3’ 하는 식으 로 미리 다 준비해두었다.

훗훗, 다 죽었어, 하는 판이니…….
하지만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듯, 그해 단편소설 당선작은 윤성희의 「레고로 만든 집」이었다. 내 작품은 본심에도 오 르지 못하고 그대로 낙방. 훗훗, 그냥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불행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그해 1월 1일 자 신문이 나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선 생님이 몇몇 제자와 함께 나를 위로할 겸 용인 작업실에 내려오셨는데…… 그 러면 그냥 술이나 마시고 평소 하던 것처럼 우리끼리 떠들썩하게 놀다가 헤어 졌으면 좋았을 걸, 술자리 시작 전에 불쑥 이런 말씀을 하신 것이다.
- 내가 이번에 동아일보 심사를 봤는데, 거기 당선작이 참 좋더라. 우리 그 친구한테 전화나 한번 해보자.
물론 나는 선생님께 어디어디 신춘문예에 냈다고 말하진 않았지만, 그 순간 엔 말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그렇다고 전화를 한다는 선생님을 말릴 수도 없고, 그냥 말없이 술잔만 비우면서 앉아 있었는데, 이게 웬걸, 전화 통화가 된 당선자가 그 시간에 직접 용인 작업실까지 놀러 오겠다는 것이었다. 아아, 나 는 정말 대뜸 수화기를 낚아채 말리고 싶었다. 윤성희인지 윤레고인지, 얼굴을 보고 싶지도 않았고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는 아무 잘못 없지만, 그 걸 빤히 알고 있었지만, 그때 내 솔직한 심정은 그랬다. 아니, 왜 제자를 위로 하러 오셔서, 왜 제자를 두 번 죽이려 하시나. 나는 괜스레 선생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내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정말 그날 저녁 윤성희는 거짓말처럼 용인까지 찾아왔다. 나를 떨어뜨린 소설이 뚜 벅뚜벅 내 앞으로 걸어온 것이었다.

2.
성희는 몰랐겠지만 그러고 난 후, 나는 며칠 심각하게 앓았는데(말하자면 술병이 난 것이었다), 혼 자 낑낑 용인 작업실에 누워 있으면서도 계속 그 얼굴이 생각났다. 소설만 봐서는 무척이나 우울하 고 말 한마디 없는 친구인 줄 알았는데, 이게 웬걸, 그녀는 성격도 좋고 말도 많고 술도 잘 마셨다(성 희는 내 나이를 묻고는 바로 말을 ‘까자고’ 했다. 에이 씨, 내가 한 살 더 많은데…… 소설 잘 쓴다고 말도 까고…… 속으론 그렇게 억울해 했지만…… 나는 잠자코 말을 깠다). 성격도 좋고 말도 많고 술도 잘 마시면서 그런 내면을 써냈단 말이지…… 그런 작품이 당선작이 된단 말이지…… 그렇다면 나 도…… 훗훗.
나는 그해 1월 중순부터 다시 문예지에 응모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이번엔 당선소감을 먼저 써 놓진 않았다. 조금 주눅이 들었던 것이었다.

3.
성희는 몰랐겠지만 그해 3월 말에 있던 《현대문학》 신인추천공모에 응모할 소설을 쓰기 전까지 나 는 「레고로 만든 집」을 수십 번 읽고 또 읽었다. 질투도 났지만, 또 그만큼 그 소설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몰라도 그때 내가 쓴 소설은 불법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젊은 부부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이야기였는데, 아내는 「레고로 만든 집」에 나오는 ‘나’의 성격을 많이 닮아 있었고, 남편은 ‘오빠’와 흡사한, 뭐 그런 소설이었다. 그 소설을 두 달 가까이 온 마음과 시간을 들여 완성한 후 《현대문학》에 보내려고 했는데, 이제 슬슬 당선소감을 써볼까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거기에 서 또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주소를 확인하려고 《현대문학》을 펼쳐 보니, 아뿔싸, 소설 한 편이 아닌 두 편이 의무사항이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은 불법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젊은 부부 이야기 한 편뿐 인데, 어쩌나…… 이건 내기만 하면 바로 당선인데, 어쩌나…… 나는 몇 시간 고민하다가 바로 새로운 소설 한 편을 급하게 시작했다. 이미 써놓은 소설이 워낙 좋으니, 나머지 한 편은 그냥 대충 써도 될 거야. 편수만 대강 맞추면 될 거야. 그런 심정으로 소설을 썼다. 그랬더니 정말 사흘 만에 뚝딱 소설 한 편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 작품이 바로 내 데뷔작이 된 「버니」였다. 후에 《현대문학》 편집자에게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불법 카세트테이프를 파는 젊은 부부 이야기 때문에 이 사람을 떨어뜨려야 하 나 마나, 심사위원들이 오랫동안 고민했다는 것이다.

4.
성희는 몰랐겠지만 나는 작가가 된 이후에도 「레고로 만든 집」에 대해서 자주 생각했다. 어쩌다가 내 몸에서 「버니」 같은 소설이 나오게 되었을까? 나는 그 소설이 「레고로 만든 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믿고 있다. 한 작가의 탄생은, 다른 작가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것. 서로 다른 세계를 그 리고 있지만, 그러나 연결되어 있다는 것. 그래서 그 뒤로도 나는 「레고로 만든 집」의 ‘나’를 많이 아끼 고 사랑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성희에겐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