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난두 페소아의 『리스본: 관광객이 꼭 봐야할 것들』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 ①세계의 작가들, 문학의 미래를 묻다 ②문학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시각과 상상력을 펼치는 장 ③세계문학의 거장들, 한국문학과 만나다 ④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가하는 세계의 작가들
①구름처럼, 낙조처럼 ②내 기억 속의 유일한 할머니 ③떨리는 손으로 마지막까지 쓴 ‘통일’과 ‘민주화’ ④두 아버지가 남긴 비의(秘意)
내를 건너 숲으로 고개를 넘어 마을로 나의 길은 언제나 새로운 길
첫번째｜정치적인 것과 예술적인 것 두번째｜슬픔 세 번째｜어디로 가는 배냐 황포돛대야 네 번째｜나무가 된 시인
①진정성, 새로운 상상력 그리고 자신만의 언어 ②범죄소설 바깥을 쓰는 작가 ③이제 없는 당신들에게
어지러운 현실의 아득한 출구 글 문광훈
글 문광훈 ㅣ 충북대학교 독어독문학과 교수. 1964년생
저서 『가장의 근심』 『심미주의 선언』 『가면병기창-발터 벤야민론』 『숨은 조화』 『렘브란트의 웃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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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안가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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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말 사흘 동안 동해안을 걸었다. 속초에 있는 청초호에서부터 출발하여 영랑호를 지나 고성 그리고 화진포에 이르기까지 50km 정도 되는 거리였다. 도착한 날에는 오후 들어 갑작스레 폭설이 내렸고, 그래서 숙소에 들어가는 일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게 없었다. 다행히 그 다음 이틀은 화창했다. 그래서 걷기에 좋았다. 밤 사이에 얼어붙은 눈길을 걷거나, 때로는 그 울퉁불퉁한 길마저 끊겨 애를 먹기도 했지만, 하루 종일 걷는 그 일이 그런대로 괜찮다. 그렇게 나는 동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나 있는 크고 작은 해수욕장과 포구를 스물 여개 지나왔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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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해안가에는 무엇이 있었던가?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크고 넓은 모래사장에는, 간혹 한 두 군데 예외는 있었지만, 그러나 대개는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지난여름에는 그토록 많 은 사람들로 북적였을 테지만, 겨울의 그곳에는 파도와 모래와 바람만 왔다가 가곤 했다. 나는 그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소리를 들었고, 쉼 없이 밀려왔다가 부서지고 물러나는 그 물결의 거 품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가끔 고개를 들어 수평선 저 너머를 바라보기도 했다. 저 머나먼 곳, 그곳은 내가 볼 수도 들을 수도, 냄새 맡거나 만지거나 맛볼 수도 없다. 거기서는 내 오감(五感) 이 멈추고, 이 멈춘 오감 너머로 미지의 세계가 펼쳐져 있을 것이다. 아마도 세상사의 많은 것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이런 겹침 속에서, 이 모든 것이 말없이 순환하는 가운데 생성과 소멸을 끝없이 되풀이할 것이다.
여기 있는 것은 저기 있는 것에 의해 둘러싸여 있고, 이 모든 있는 것은 있지 않는 것 혹은 앞 으로 있게 될 것의 바탕 위에 자리한다. 그러면서 있는 것과 있지 않는 것,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은 맞물려 있다. 마치 존재자가 비존재자를 수반하면서 이 비존재자와 공존하듯이, 삶 의 물리학은 그 형이상학을 배제할 수 없다. 이것은 드러난 모든 것이 아직 드러나지 않은 것 - 앞으로 가능하게 될 무엇을 배경으로 하는 것과 같다. 아무도 없는 겨울 바닷가에서 나는 쉼 없이 밀려오는 물결을 바라보고, 한결같은 파도소리를 들으며, 불어오는 그 찬 바람을 맞았다.
그러면서 잠시 나를 살펴보고 내 주변을 돌아보았다. 지난 두어 달 동안 내가 했던 일이나 내가 속한 현실이 조금씩 떠올랐다.
이제서야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이었다. 내가 서울을 떠나온 것은 아마도 이런 생래적 욕구 - 하루가 멀다 하고 터져 나오는 온갖 병리적 현상들로부터 나를 떼놓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는 지도 모른다. 이 현상의 중심에는 물론 최순실 사태가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통령의 무책 임과 시스템의 미비, 사사로운 것의 공적 전횡 등등 많은 것을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촛불집회 는 그렇게 해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도 답답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마치 갇혀 있는 듯 뭔가 좁 고 부박하며 표피적인 느낌을 떨치기 어려웠다. 왜 그랬던 것이었을까?
사람이 하는 많은 일은 개별적으로 일어나면서도 구조적으로 맞물린 채 진행된다. 오늘의 한 국사회가 물질적으로는 번지르르하면서도 그 속은 왜 내실 있고 충일한 느낌을 주지 못하는 것 일까? 나는 이 땅의 공론장을 떠올린다. 한국인의 일상적 삶은 대체로 차분하고 안정된 것이라 고 말하기 어렵다. 그 전체적 풍경은 여전히 거칠고 살벌하다고 할 수 있다. 이곳 현실에서는 흥 분되고 격앙된 어조가 지배적이고, 비방과 질타가 끝없이 반복된다. 공론장의 수준이 이렇게 낮기에 정부시스템도 과오를 반복하고, 시스템을 구성하는 사람들도 위에서부터 바르게 행동하 지 못했을 것이다. 끝없이 회자되는 이런 추문들이 나는 견디기 어려웠다.
일어난 사실은 중요하다. 그러나 사실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사실에 대한 바른 검토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어난 일과 그에 관한 검토 이외의 알려지지 않은 가능성을 인간의 현실은 포함한다는 사실일 지도 모른다. ‘인간과 사회의 관계’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포함하는 ‘개인과 세계 사이의 관계’가 더 근본적일 것이라는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사회 진단 은 이런 근본 사실을 포함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 근본 사실이 누락될 때, 인간 현실은 표피적 현실로 대체된다.
‘열려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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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의 현실은 자주 추락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도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핵심은 우리 사회가, 서구 사회와는 달리, 역사의 누적적 경험을 통해 그 근대적 가치를 하나씩 정비해오지 못한 데 있지 않나 싶다. 아마도 이번 스캔들에서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모욕감 을 느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촛불집회를 한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 이다. 그러면서도 그 같은 추문이 그토록 오랫동안, 벌써 석 달 가까이 이 땅의 사적 공적 영역 을 휩쓴다는 것은 불쾌한 일이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되풀이되는 현실의 이런 추락 앞에서도 현실을 넓고 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실의 문제는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나아가 여기에는 인간이 관련되어 있고, 인간과 관련된 실존적 문제는 사회적 문제보다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이 물음 앞에 우리는 먼저 열려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열려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짐바브웨 출신 작가인 페티나 가파(Petina Gappah)가 출간한 책 중에는 탐험가 데이비드 리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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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턴(David Livingstone)에 대한 것이 있 다. 이 작품은 남아프리카를 탐험하면서 노예무 역의 비참한 실상을 목격하고 선교일도 병행하 다가 그가 죽게 되었을 때, 그의 동행인들이 리 빙스턴의 심장과 간 등 모든 내장을 꺼내고 나서 그 시체를 햇볕에 말린 후, 그것을 그의 고국 인 영국으로 배에 실어 보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파는 최근의 한 인터뷰에서 왜 아프리카 사 람들이 그렇게 했는지, 리빙스턴이 유령이 되어 그들을 쫓아다닐 게 두려워서 그랬는지, 아니면 영국 사람도 자기의 고향 마을에 묻혀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면서, 이 이야기를 70개의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가파의 또 다른 소설 『기억의 책』(2015)은 ‘메모리(memory)’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여성이 짐 바브웨 여자형무소에서 처형을 기다리는 동안 과거의 사건들을 회고하는 작품이다. 여기에는 5 백가지의 서로 다른 일이 형무소 안에서 동시에 일어나는 장면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그녀가 사고하는 방식이라고 했다(『Zeit』, 2016. 12. 12.).
무엇인가에 ‘열려있다’는 것은, 가파의 예를 들면, 천 명의 삶에 대해 천 가지 방식으로 쓰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천 가지 사물에 대하여 천 가지 반응으로 보고 듣고 느끼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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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것, 그것이 현실에 대해 열려 있고, 그래서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는 바람직한 방식 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우리가 만나는 사람에 대하여, 내가 겪는 현실 의 크고 작은 사건에 대하여, 또 내가 바라보는 꽃과 나무와 바람과 하 늘에 대하여, 나아가 우리가 경험하는 이 나라의 현실과 문화에 대하 여 그렇게 할 수 있는가? 그렇게 함으로써 일어난 갈등을 고민하면서 도, 이 갈등에 완전히 포박되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의 가능성까지 염 두에 둘 수 있는가? 그래서 현재적 삶의 낙후에도 불구하고 현실의 삶 을 언제나 드넓고 깊은 지평 아래 바라볼 수 있는가?
현실에 열려 있다는 것은 현실을 그 실현태에서뿐만 아니라 그 가능 성 속에서 바라본다는 뜻이다. 지금 일어난 현실은 현재적으로 중요하지만, 그러나 이 현재적 중요성이 현실의 전체는 아니라는 것, 오히려 그것은 현실의 일부이고, 이 현실이 부단히 변하 는 한 앞으로 다가올 현실은 그 이상일 것이라는 것, 바로 이 점을 의식하는 것이 정신의 개방 성이다. 열린 정신은 현실을 그 가능성의 깊이와 넓이 아래 파악하려 할 때, 비로소 생겨난다. 충일한 삶은 열린 현실을 감지하는 열린 의식 속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이 열린 의식으로 현실 을 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사회정치적 현실에 영향 받으면서도 그러나 때로는 그와 무관하게, 그래서 있을 수 있는 편향과 경사(傾斜)를 줄이면서, 어떤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도 있을 것이 다.
한 사회가 성숙하다면, 거기에는 이런 열린 의식, 열린 현실이해가 자리할 것이다. 또 그렇게 될 때, 그 사회의 공론장은 이미 어느 정도 건전하게 구성되어 있을 것이다. 한 사회가 이러하다 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은, 크고 작은 갈등과 사건에도 불구하고 그 나름의 삶을 ‘그 런대로 충일하게’ 살아간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민주사회이고, 바람직한 공동체의 모 습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충만한 삶은 오늘의 현실에서 어렵다. 현대사회에서 그것은 더 어렵게 보이고,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왜냐하면 현대란, 더러 지적되듯이 ‘속도’에 의해 규정되고, 나아 가 순간과 파편, 충격과 익명성, 우연성과 끔찍함으로 특징지어지기 때문이다. 사회는 급격하게 변하고 있고, 현실과 가상은 쉽게 구분되지 않으며, 인간 사이의 관계는 거칠고 낯설다. 그리하 여 삶의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은 날이 갈수록 고조된다. 여기에서 어떻게 충만한 삶을 살 수 있 고, 어떻게 행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아마도 카프카가 ‘자유보다는 출구’를 말한 것은 이런 현 대성의 징후를 감지해서일지도 모른다.
자유가 아니라 출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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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Franz Kafka)는 거리의 사람들이 언제나 똑같은 표정과 똑같은 동작 아래 오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모든 사람들이 ‘동일인물’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짧은 산문인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1917)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주인공인 원숭이는 “본질적으로 새로운 내 용을 보고할 게 없다”고 처음에 고백한다. 그러면서 단지 인간세계에 자리잡기까지의 “경로 정 도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그는 말한다. “저는 자유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원했던 것은 오직 출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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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프카가 자유를 원하지 않았던 것은 자유가 좋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그가 자유라는 말 을 주저한 것은, 마치 이 자유가 지극히 당연하고 아무런 노력 없이도 손쉽게 얻을 수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람들이 쉽게 말하고, 그럼으로써 거짓을 일삼고, 그로 인해 결국 크고 작은 실 망을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삶에서 자유가 얼마나 혹독하리만치 버거운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자유란 삶과 별개로 존재하는 게 아니다. 지금이 꼼짝없이 갇힌 처지라는 것, 이 갇힌 처지를 깨닫는 것, 그래서 이러한 처지로부터 벗어나려 하고, 이렇게 벗어나려는 몸부 림이야말로 자유의 시작이고 실천이며, 어쩌면 자유의 모든 것일 수도 있다. 사람의 현재 상태 란 이미 주어진 것에, 명시적이건 암묵적이건,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이런저런 식으로 ‘얽혀’ 있기 때문이다. 말에 얽혀있고, 느끼고 생각하는 방식에 얽혀 있으며, 사람 사이의 관계에 얽혀 있어서 우리는 기존의 틀을 대개 답습하기 때문이다. 매일매일 우리를 움직이는 것은 일상의 저 강고한 타성이기 때문이다.
카프카는 거창한 말을 삼갔다. 그는 가능한 한 수식 없이, 최대한 정확하게, 서술하고자 애썼 다. 그래서 그의 언어는 마치 ‘관공서의 언어(Amtssprache)’처럼 건조하고 딱딱하다. 그러면서 도 핵심은 놓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하여 그가 가닿은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가운데 ‘부단 히 연습하는 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출구를 찾으려면 배워야만 했습니다. 저는 닥치는 대로 배웠습니다.” 원숭이가 매일 저녁에 했던 공연도 그렇게 배우려는 시도의 하나였을 것이다. 원숭 이의 그런 시도는 출구를 향한 인간의 시도에 대한 비유가 될 것이다.
이것을 우리는 ‘시적 문학적 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사실을 그대로 좇는 것이 아니라, 카프카가 원숭이를 내세워 학술보고를 하듯이, 하나의 사례를 들어 ‘비유적으로’ 말하 는 것, 그러면서 현실의 드러난 모습만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가능성을 생각하고 그에 대해 서 술하는 방식 말이다. 문학예술은 어떤 가능성-기존현실과는 다른 현실적 가능성에 대한 탐구 다. 있을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이 가능성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면서 현실을 성찰하고 비판하 는 것이 문학의 방법이다. 그것이 아마도 그가 감당할 수 있는 그 나름의 희망방식이었을 것이 고, 희망에 대한 카프카적 대응방식이었을 것이다.
자족 속의 항진(亢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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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바다를 찾아가 보고 남은 것은 무엇인가? 별다른 것은 없다. 아니다. 어쩌면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고 말해야 할지도 모른다. 2천5백여 년 전 고대 그리스의 한 철인은 이렇게 썼다. “타향살이는 삶의 자족(自足)을 가르친다.”
구태의연한 말이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새삼 귀하다는 것을 다시 느꼈다. 그저 느낀 것에 그친 것이 아니라 영혼의 밑바닥으로부터 내가 하는 일의 소중함을 절감하였다고 할까. 하루 종일 찬바람을 맞으며 해안가를 걷다보면, 해가 저물 무렵에는 온몸에 냉기가 돌면서 팔다리가 굳어져 가는 듯했다. 허기진 배를 쥐고 한 그릇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다면, 그것은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 며칠 동해안 바닷가를 거닐면서 나는 나의 집과 나의 방을 떠올리고, 내가 속한 공동체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가지고 있지 않는 것들에 괴로워하지 말고, 가지고 있는 것들로 즐거워하는 사람이 현명하다고 했던가?
그러나 나의 자족하는 마음이 내가 사는 사회의 합리적 구성과 이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사로운 쾌락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거꾸로 내가 하는 일이 세계에 열려 있다면, 그것은 크게 잘못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스스로의 관점을 더 넓은 현실로 여는 가운데 끊임없 이 교정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 부단한 자기교정에 말없는 것들-겨울바다의 풍경은 큰 역할 을 할 것이다. 파도와 모래, 바람과 물결과 수평선은 훼손되지 않는 것의 원형적 이미지다. 이 말없이 온당한 것들에 기대어 나는 나 자신을 바로잡고, 이런 방향잡기에 흡족해하면서 계속 항진해나갈 것이다.
인간과 그 삶을 훼손되지 않는 가능성 아래 이해하려는 것, 그것은 천 명의 사람을 천 가지 방식으로 이해하려는 가파의 사고방식이기도 하고, 자유보다는 출구를 갈망한 카프카의 실천 방식이기도 할 것이다. 현실은 언제나 어지럽고 그 출구는 늘 아득하다. 인간에게 자유란 어디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넓이와 깊이를 잊지 않은 채 그 현실적 출구를 모색하는 데 있을 것이다. 이런 모색으로부터 좀 더 나은 현실도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