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과 북의 연극사에서 오랫동안 지워진 존재 - 극작가 함세덕과 말하다
특집을 기획하며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 1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들2 한국문학을 바라보는 외부세계의 시선들 3
동아시아 문학포럼 1기 순환고리 완성, 다시 미래를 향하여 각기 다른 방식으로 글을 쓰는 33인의 성주(城主)들 대산문학상, 풍성한 가을걷이를 향해 출발 젊은 작가들의 담백한 풍경과 개성을 선하다
이 우주가 우리에게 준 두 가지 선물 사랑하는 힘과 질문하는 능력
대작 에세이
본디 입장료가 닷푼(nickel)이었던 20세기 초 미국의 ‘동네 싸구려 영화관(nickelodeon)’에서 이름을 차용한 니클로디언은 종합 어린이 텔레비전방송이다. 필자는 주한 미군 방송 AFKN-TV를 통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니클로디언의 <닷푼 소식(Nick News)>을 한때 열심히 시청했다. 1991년부터 지금까지 25년 동안 장수를 누려온 <닷푼 소식>의 특이한 보도 형식이 인상적이어서였다.
전형적인 육하원칙을 벗어난 30분짜리 <닷푼 소식>의 구성은 고전적인틀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적인 첨삭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특정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고정시키는 효과를 냈다. 청소년들에게 발언의 기회까지 따로 마련해주던 이 시사해설 프로그램은 교육 방식의 참된 귀감으로 삼을만한 언론 예술이었다
<닷푼 소식>에서 ‘닻(anchor)’ 노릇을 한 사람은 NBC-TV 보도국 시절에 “가장 기사를 잘 쓰고 가장 지적인 진행을 한다”고 정평이 났던 여성 방송인 린다 엘러비(Linda Ellerbee)였다. 1944년에 태어났으니까 어느새 칠순으로 접어든 엘러비는 이 방송을 통해서 언론에 관한 몇 가지 명언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나쁜 소식(bad news)’을 옹호한 일침이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역겨움이 최근 한국인들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팽배하는 듯싶은데, 그것은 넘쳐나는 나쁜 소식의 탓이 크다고 하겠다. 흉흉한 소식에 대한 과잉 보도는 정치꾼들의 아귀다툼과 치졸한 이념 논쟁 그리고 사방에서 날뛰는 온갖 흉악범이 엮어내는 혐오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지는 집단 기피증을 언론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발하고, 편파적인 인터넷 유사 언론은 일부 현실을 극도로 과장하고 왜곡하여 전달하는 매체로 이용되면서 정통 언론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증폭시킨다.
신문에 쓸 불쾌한 기사가 없어서 기자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성탄절 카드처럼 예쁘고 낭만적인 미담만 찾아다니는 세상이 온다면야 얼마나 좋으랴만, 요즈음 신문과 방송을 뒤덮는 불쾌한 소식들은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기만 하다. 분란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여 언론이 서술하는 험악하고 더러운 풍토가 역겨워 시민들의 정신건강까지 오염될지경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쁜 양상들을 자꾸만 부각시키면 사람들은 악덕에 익숙해지고 면역이 생겨서,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겠다”며 정상적인 가치를 도외시하는 ‘불감증’에 전염된다.
20세기 후반의 미국에서 역시 ‘이유 없는 반항’의 윤리적 무질서와 냉전시대의 정치적인 기만과 워터게이트 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한 좌절과 혐오감이 한때 만연했다. 그리고“나쁜 소식만 골라 확대해서 비관적으로 전하는 불건전한 미국 언론”을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엘러비는 이런 식으로 마주 대들었다.
“언론은 정상적인 사건들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거나 ‘전 국민이 아침식사를 무사히 잘 끝냈다’라는 식의 기사는 신문에 나지 않습니다.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을 원한다면 러시아로 가십시오.” 《로동신문》식의 보도만이 바람직한 언론은 아니라는 뜻이다
특종 사냥은 기자들의 본능이다. 신문과 방송 또한 기업이다 보니까, 독자와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 광고료의 요율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솔깃한 사건들을 뒤지고 찾아다니는생리가 당연하다. 또한 특종은 일선 취재기자들에게는 훈장과 같은 개인적인 명예여서, 언론인에게는 막강한 권위를 부여하는 평생 업적으로 남는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틴(Carl Bernstein) 기자의 워터게이트 특종이 바로 그런 전리품이었다.
과다한 특종 경쟁은, 파파라치 현상처럼, 때로는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의 엽기적인 경계까지 치닫고는 한다. 그러다 보면 언론의 특성상 몇 건의 사고를 유일하고 전체적인 현실처럼 보도하기 마련이고, “무사했던 수많은 무사고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부작용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일반 대중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린다 엘러비 원칙의 적용이 우리 언론에서는 좀 지나치게 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타인들의 불행을 자신의 집단을 위한 이기적인 무기로 삼으려는 정치 집단의 농간으로 인해 언론이 흔들리면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례를 정치적으로 과장하여 국가 경제와 통치까지 함께 통째로 침몰시키려고 했던 몇몇 경우가 그렇다.
린다 엘러비는 이런 말도 했다. “Why no news is good news? Because there are so many bad news.”(왜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아요? 나쁜 소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정말일까? 법무사로 오랫동안 일해 온 낚시 친구에게 언젠가 필자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날이면 날마다 소송 사건만 다루다 보니까 세상에 나쁜 사람들 참 많다는 참담한 기분 안 들어요?” 그랬더니 그가 명답을 했다. “그래도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요즈음 아버지와 어머니를 토막 내어 암매장하는 패륜아들과 핏덩이 자식을 죽여 봉투에 담아 공중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젊은 여성에 관한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 주변의 삭막하고 끔찍한 세상에는 온통 못된 가족들만 우글거린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필자의 친구 법무사는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좋은 가족들이 훨씬 많다고 믿는다.
린다 엘러비는 이런 말도 했다. “어려운 선택을 하기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기자라는 직업인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행위가 권리이기는 하지만, 또한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는 전제다. 그것은 다수결 민주주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소수의 이익을 지키려는 고민을 의미하는 듯싶다. 소수이지만 보편적 대표성을 갖춘 집단의 관심사나, 개인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사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언론인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지적한 표현이겠다.
만인의 복지를 추구하는 생산적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공정성의 배분율 역시 심각한 고민거리요 중요한 숙제라고 하겠다. 성경의 루카 복음서 15장 1-7절에 나오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 담긴 비논리적인 계산법을 잠시 따져보자.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는 전제에 이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하는 대목이다. 99마리의 착한 양을 정성껏 돌보겠다는 배려를 하지 않고 “광야에 놓아둔 채”로, 검은양 한 마리를 개과천선시키느라고 엄청난 정력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99:1로 비효율적인 국가 운영이다. 의로운 99명은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목소리 큰 놈’만 떠받드는 사회는 결코 만인이 꿈꾸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아니다. 아주 간단한 99:1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 어떤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필자를 소개할 때 이름 뒤에 ‘씨’라는 호칭을 붙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필자는 불평을 한 적이 없다. 언론에서는 만인 평등의 원칙에 따라 본디 어떤 인물에게도 경칭어를 쓰면 안 된다는 통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큰 사건이 터진 다음에 보면, 희대의 흉악범들에게는 신문과 방송에서 의례적으로 ‘씨’ 호칭을 열심히 붙여준다. ‘씨’를 안 붙여주면 인권 단체에서 범죄자를 차별대우한다고 유별나게 당장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인권(人權)’은 “인간의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씨’ 현상을 보면, 때로는 차마 ‘인간’이라고 간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흉악범들에게는 경칭을 붙여주는 반면에 무고한 일반 시민에게는 똑같은 혜택을 주지 않는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은 그냥 광야에 놓아두더라도 워낙 얌전하고 목소리가 작아 그냥 참고 넘어가기 때문인 모양이다.
CCTV가 “사생활을 노출시키고 침해한다”는 항변 또한 ‘씨’와 비슷한 논리처럼 보인다. CCTV를 미워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나 간첩처럼 그들의 행동이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다. 반면에 부끄러울 바가 없이 정상적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는 CCTV가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한 마리의 검은 양으로부터 지켜주는 막강한 첨단 보호 장치다. 그렇다면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CCTV의 감시를 피해야 하는 한 마리의 양을 끝까지 존중하고 지켜주기 위해 평화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99마리 시민의 인권을 무시해야 옳다는 논리일까?
예언적인 소설 『1984년』에서 CCTV 노릇을 하는 ‘큰형(Big Brother)’의 개념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허점을 여기저기 드러낸다. 현대 21세기 초반에는 조지 오웰이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양상들로 인해서 인간 집단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준과 표본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1984년』은 본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이었다. ‘큰형’은 스탈린의 독재를 상징하는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다가 사회주의 종주국이 봉건적인 계급 사회를 개혁하려는 실험 끝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대의 구조적인 흐름과 ‘계급’에만 지나치게 많은 신경을 쓰고 인간 본성의 경쟁 본능을 간과한 착오 때문이었다.
그러자 소설과 거기에 담긴 이념 비판은 그대로인데 독자들의 해석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했던 탓이다. 세계 인구는 『1984년』이 출간된 1949년에는 아직 30억에 미달했지만, 2011년 10월에 두 배가 넘는 70억으로 늘어났다. “두 배로 늘었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심각성이 얼른 이해가 안 가겠지만, 필자는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49년의 서울 인구는 150만 정도였는데 지금은 1천만이 넘는다. 물론 서울의 면적이 같은 기간에 많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강남이나 우이동이나 화곡동이나 구파발 지역은 인구 밀도가 지극히 희박한 허허벌판과 같았다는 사실 또한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필자는 마포구 공덕동 434번지 지하철 공덕역 2번 출구가 뚫린 바로 그 자리에 살면서 자치기를 하고 제기를 차고 연을 날리며 전찻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재를 신고하는 번호 119는커녕 아예 전화 자체가 귀했던 당시에는 5층 정도 높이의 광화문 소방서 망루에서 근무자가 사주경계를 하다가 어디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화재의 규모와 심각성을 연기와 불길의 모양으로 대충 판단하고는 4대문 밖까지 불자동차를 출동시키고는 했다. 5층이 넘어 시야를 가로막는 고층 건물이 서울에는 8층짜리 반도호텔 하나뿐이어서 가능했던 ‘옛이야기’다.
끊임없이 인구가 폭발을 거듭하는 사이에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과학 문명이 일취월장을 계속했고, 그와 더불어 범죄와 사회악이 덩달아 장족의 진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소방서 망루 대신 수많은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을 떠다니며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바람에 남태평양 무인도에서부터 남극에 이르기까지 낭만적인 신비의 공간은 거의 다 사라졌다.
물론 인권 의식 또한 세상을 보는 시각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리고 언론인들뿐 아니라 젊은 작가들 또한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분석하여 비판하는 역시대착오적인 실수를 서슴지 않는다. 인구 증가로 인한 대형 사회의 탄생을 거쳐, 동시에 정보를 공유하는 범세계적 통신 체제와 역학적 통제 수단이 구축되고, 그래서 개별적인 국가의 독립된 통치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소수의 인권이 최우선이라는 사상은 이제 지나치게 낡은 개념이 되었다.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 악당이 나타나면 선당이 칼을 차고 찾아가서 결투를 벌여 정의를 수호하던 과거의 방식은, 인공위성과 첨단 통신 수단을 한껏 활용하는 지금의 전화 사기범 시대에는, 그리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 아니다. 기다리는 시내버스가 정확히 몇 분 후에 도착하리라고 정류장 전광판이 고자질을 해주는 세상에서는 마셜 맥루한의 첨단적인 도발 미학 또한 피터 막스(Peter Max Finkelstein) 상업 광고의 차원으로 빛을 잃는다.
인터넷에서 남용되는 표현의 자유와 CCTV 인권 논리는, 사회를 파괴하려는 비인간적인 소수 집단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죄 없는 수많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희생시킬 특권을 누리려는 명분을 정당화할 통계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유사한 논리를 제시한다면, 다수의 기득권이 ‘갑질’을 해가면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물론 안 되겠지만, 평생 피땀 흘려 구축한 기성세대 시민들의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하겠다는 ‘소외층’의 위협 또한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평등권을 요구하는 소수의 혁명은 흔히 장기간에 걸친 헌신적인 노력의 양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동에 대하여 과분한 대가를 요구하려는 불평등한 논리에 기초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진리보다는 다수의 진리가 분명히 중요하고, 집단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는 소수 우선의원칙은 별로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진보와 혁명은 소수의 저항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 언론은 길을 벗어난 검은 양의 소수 의견과 선동을 대변하는 논리가 지나치게 강한 듯싶은 인상을 준다.
이것은 물론 인권 개념에서 퇴보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정(正, thesis)과 군중 광장 정치의 결함을 제거하려는 반(反, antithesis)이 이제는 낡아빠진 충돌의 권태기를 벗어나 새로운 합(合, synthesis)으로 발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사견의 피력이다.
상식을 벗어난 99:1 우화에서 드러난 모순을 수정하려는 듯 어떤 종교인들은 양치기가 99마리를 들판에 버려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다음에야 나머지 한 마리를 마저 찾으러 나섰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99마리를 위험하게 방치했거나 버렸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양떼의 주인은 박애 정신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한 마리의 양이나마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돌아갔을 뿐이다. 주인에게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양치기가 돌아갔다는 어떤 목자들의 가설 또한 양을 구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의무감이나 두려움에 쫓긴 행위였다는 의미로 풀이해야 옳겠다. 이렇듯 변명을 위한 꼬리표를 너무 주렁주렁 많이 붙이다 보면 본디 의미 자체가 희석되어 무의미해지기가 일쑤다.
자칫 부정확하고 엉뚱한 결론으로 빠지기 쉬운 용두사미 화법의 부정확한 전달 방식과 교묘한 발언은 이렇듯 분석하는 개인적인 시각에 따라 문맥상의 의미가 달라지면서 진실을 호도한다. 루카 복음서의 ‘비유’를 상징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직설적인 언급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해의 잠재성이 오락가락 넘실거린다.
뿐만 아니라 상징성을 해석하는 이기적인 어떤 가능성이 모호한 빈틈을 파고 들어가 편파적 고정관념을 유일하고 확고한 사실로 각인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끼어들어 작용한다면. 순진한 대중은 착각의 미학과 수사학에 현혹되어, 그들의 서투른 감동은 선동의 제물이 되기 쉽다. 표현의 정확성이 흔들리면 언론의 영향력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이유다.
언젠가 언론에서는 조류 독감의 명칭을 행정 시책에 따라 AI라고 순식간에 바꾸었다.축산 농가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AI(avian influenza)는 ‘조류 독감’이 맞다.AI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 약자여서 소비자들이 마음 놓고 닭과 오리를 열심히 소비하리라는 계산에 따른 조처였던 듯싶다. 그렇지만 그런 편파적인 공식 결정은 결과적으로 다수의 시민을 기만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조류 독감을 애매하게 AI라고 ‘개명’해서 질병의 성격이 달라졌을 리가 없고, 소비자들의 경계심 또한 별로 누그러지지 않았다. AI 명칭의 채택은 그냥 일부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과 정부 당국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질병의 진실을 숨기려는 서투른 은폐 행위가 된 셈이다. 2014년 12월 28일 성남의 모란민속장에서 AI 병원균이 발견되자 50년 만에 처음으로 연말 5일장을 아예 휴장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까닭은 조류 독감을 아무리 AI라고 포장해도 진실의 핵심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동지들과의 한통속 소수 의견 차원에서만 머무르는 개인들의 역사의식이 과연 권위와 책임감을 얼마나 수반하는지 알 길이 없는 풍토에서라면, 오히려 통계적 다수결의 견해를 대변하는 방식의 부분적인 수용이 모순을 피하는 요령으로써 어느 만큼은 바람직할 듯싶다. “그는 폭력을 밥 먹듯 휘두르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언론이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심판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 결과를 확인해 보니 용의자는 이웃 사람 여섯 명을 3년 동안 갈취했다고 한다”는 식으로 남의 말을 사실 그대로 인용하면, 독자는 “거 참 나쁜 놈이구나”하고 자연스럽게 판단한다.
실상을 소상히 투명하게 보도하고, “이런 때려죽일 놈들”이라며 손가락과 삿대질 비판은 하지 않는 신중함을 제대로 발휘하여, 매체와 언론인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분노를 독자의 몫으로 돌리면, 오히려 더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다. 이 한 가지 기본이나마 잘 지키려고 노력만 하더라도 언론의 공평성 유지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소한 원칙을 무시하고 안 지키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언론으로 성장하기가 쉽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단순히 나쁜 소식보다는 당파싸움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편파 보도가 “보기 싫은 뉴스”와 “지겨운 언론”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주동력으로 작용한다.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이비 언론이 구가하는 표현의 자유는 정의를 진정으로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어서, 거짓말을 미화하는 질병만 조장할 따름이다. 평형과 정을 잃고 한 쪽으로 치우쳐 선전이나 선동에 열중하는 ‘정통’ 언론 보도의 편협한 행태 역시 마찬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린다 엘러비가 언급한 “어려운 선택”은 어떤 나쁜 소식이 과연 소수의 얘기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갖추었느냐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경고인 셈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에서 자나 깨나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 및 이념적 목적에 맞춰 한가지 병적인 양상만 부각하는 폭군적인 매체들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린다 엘러비와 99 마리의 양
글 안정효 ㅣ 소설가. 1941년생
소설 『가을바다 사람들』 『학포장터의 두 거지』 『동생의 연구』 『은마는 오지 않는다』 『미늘』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 『나비 소리를 내는 여자』 『낭만파 남편의 편지』 『태풍의 소리』 『착각』 『실종』 『미늘의 끝』 『지압 장군을 찾아서』 『솔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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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육하원칙을 벗어난 30분짜리 <닷푼 소식>의 구성은 고전적인틀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적인 첨삭을 가하지 않으면서도 어떤 특정한 주제에 초점을 맞춰 시청자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고정시키는 효과를 냈다. 청소년들에게 발언의 기회까지 따로 마련해주던 이 시사해설 프로그램은 교육 방식의 참된 귀감으로 삼을만한 언론 예술이었다
<닷푼 소식>에서 ‘닻(anchor)’ 노릇을 한 사람은 NBC-TV 보도국 시절에 “가장 기사를 잘 쓰고 가장 지적인 진행을 한다”고 정평이 났던 여성 방송인 린다 엘러비(Linda Ellerbee)였다. 1944년에 태어났으니까 어느새 칠순으로 접어든 엘러비는 이 방송을 통해서 언론에 관한 몇 가지 명언을 남겼으며, 그 가운데 하나가 ‘나쁜 소식(bad news)’을 옹호한 일침이었다.
언론 보도에 대한 역겨움이 최근 한국인들 사이에서 날이 갈수록 팽배하는 듯싶은데, 그것은 넘쳐나는 나쁜 소식의 탓이 크다고 하겠다. 흉흉한 소식에 대한 과잉 보도는 정치꾼들의 아귀다툼과 치졸한 이념 논쟁 그리고 사방에서 날뛰는 온갖 흉악범이 엮어내는 혐오스러운 현실을 외면하고 싶어지는 집단 기피증을 언론 소비자들 사이에서 유발하고, 편파적인 인터넷 유사 언론은 일부 현실을 극도로 과장하고 왜곡하여 전달하는 매체로 이용되면서 정통 언론 자체에 대한 거부감까지 증폭시킨다.
신문에 쓸 불쾌한 기사가 없어서 기자들이 먹고 살 길이 막막해져 성탄절 카드처럼 예쁘고 낭만적인 미담만 찾아다니는 세상이 온다면야 얼마나 좋으랴만, 요즈음 신문과 방송을 뒤덮는 불쾌한 소식들은 악머구리처럼 시끄럽기만 하다. 분란의 사회를 그대로 반영하여 언론이 서술하는 험악하고 더러운 풍토가 역겨워 시민들의 정신건강까지 오염될지경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쁜 양상들을 자꾸만 부각시키면 사람들은 악덕에 익숙해지고 면역이 생겨서, “다들 그러니까 나도 그렇게 하겠다”며 정상적인 가치를 도외시하는 ‘불감증’에 전염된다.
20세기 후반의 미국에서 역시 ‘이유 없는 반항’의 윤리적 무질서와 냉전시대의 정치적인 기만과 워터게이트 지도자들의 위선에 대한 좌절과 혐오감이 한때 만연했다. 그리고“나쁜 소식만 골라 확대해서 비관적으로 전하는 불건전한 미국 언론”을 비판하던 사람들에게 엘러비는 이런 식으로 마주 대들었다.
“언론은 정상적인 사건들은 보도하지 않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거나 ‘전 국민이 아침식사를 무사히 잘 끝냈다’라는 식의 기사는 신문에 나지 않습니다. 부정적이거나 비관적인 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을 원한다면 러시아로 가십시오.” 《로동신문》식의 보도만이 바람직한 언론은 아니라는 뜻이다
특종 사냥은 기자들의 본능이다. 신문과 방송 또한 기업이다 보니까, 독자와 시청자의 관심을 끌어 광고료의 요율을 올려야 하기 때문에, 솔깃한 사건들을 뒤지고 찾아다니는생리가 당연하다. 또한 특종은 일선 취재기자들에게는 훈장과 같은 개인적인 명예여서, 언론인에게는 막강한 권위를 부여하는 평생 업적으로 남는다.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틴(Carl Bernstein) 기자의 워터게이트 특종이 바로 그런 전리품이었다.
과다한 특종 경쟁은, 파파라치 현상처럼, 때로는 황색 언론(yellow journalism)의 엽기적인 경계까지 치닫고는 한다. 그러다 보면 언론의 특성상 몇 건의 사고를 유일하고 전체적인 현실처럼 보도하기 마련이고, “무사했던 수많은 무사고는 언급하지 않는다”는 부작용은 필연적인 결과라고 일반 대중 역시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린다 엘러비 원칙의 적용이 우리 언론에서는 좀 지나치게 심하다는 인상을 준다. 타인들의 불행을 자신의 집단을 위한 이기적인 무기로 삼으려는 정치 집단의 농간으로 인해 언론이 흔들리면 그런 경향이 더욱 심해진다. 다수가 아닌 소수의 사례를 정치적으로 과장하여 국가 경제와 통치까지 함께 통째로 침몰시키려고 했던 몇몇 경우가 그렇다.
린다 엘러비는 이런 말도 했다. “Why no news is good news? Because there are so many bad news.”(왜 무소식이 희소식인 줄 알아요? 나쁜 소식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죠.) 정말일까? 법무사로 오랫동안 일해 온 낚시 친구에게 언젠가 필자는 이런 질문을 했었다. “날이면 날마다 소송 사건만 다루다 보니까 세상에 나쁜 사람들 참 많다는 참담한 기분 안 들어요?” 그랬더니 그가 명답을 했다. “그래도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요즈음 아버지와 어머니를 토막 내어 암매장하는 패륜아들과 핏덩이 자식을 죽여 봉투에 담아 공중화장실 쓰레기통에 버리는 젊은 여성에 관한 언론 보도를 자주 접하다 보면 우리 주변의 삭막하고 끔찍한 세상에는 온통 못된 가족들만 우글거린다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필자의 친구 법무사는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좋은 가족들이 훨씬 많다고 믿는다.
린다 엘러비는 이런 말도 했다. “어려운 선택을 하기 위한 권리를 지키려고 우리는 싸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은, 기자라는 직업인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는 행위가 권리이기는 하지만, 또한 “어려운 선택”이기도 하다는 전제다. 그것은 다수결 민주주의 원칙을 어기지 않으면서 소수의 이익을 지키려는 고민을 의미하는 듯싶다. 소수이지만 보편적 대표성을 갖춘 집단의 관심사나, 개인의 얘기이기는 하지만 대다수에게 영향을 끼치는 기사가 무엇인지를 판단하는 언론인의 어려움을 솔직하게 지적한 표현이겠다.
만인의 복지를 추구하는 생산적인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공정성의 배분율 역시 심각한 고민거리요 중요한 숙제라고 하겠다. 성경의 루카 복음서 15장 1-7절에 나오는 “되찾은 양의 비유”에 담긴 비논리적인 계산법을 잠시 따져보자.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운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 가지 않느냐”는 전제에 이어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하는 대목이다. 99마리의 착한 양을 정성껏 돌보겠다는 배려를 하지 않고 “광야에 놓아둔 채”로, 검은양 한 마리를 개과천선시키느라고 엄청난 정력을 낭비한다면 그것은 99:1로 비효율적인 국가 운영이다. 의로운 99명은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세상을 시끄럽게 어지럽히는 ‘목소리 큰 놈’만 떠받드는 사회는 결코 만인이 꿈꾸는 평화롭고 이상적인 유토피아는 아니다. 아주 간단한 99:1 예를 들자면, 지금까지 어떤 방송이나 신문에서도 필자를 소개할 때 이름 뒤에 ‘씨’라는 호칭을 붙여주지 않는다. 그래도 필자는 불평을 한 적이 없다. 언론에서는 만인 평등의 원칙에 따라 본디 어떤 인물에게도 경칭어를 쓰면 안 된다는 통례를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무슨 큰 사건이 터진 다음에 보면, 희대의 흉악범들에게는 신문과 방송에서 의례적으로 ‘씨’ 호칭을 열심히 붙여준다. ‘씨’를 안 붙여주면 인권 단체에서 범죄자를 차별대우한다고 유별나게 당장 아우성을 치기 때문이다.
‘인권(人權)’은 “인간의 권리”를 뜻한다. 그런데 ‘씨’ 현상을 보면, 때로는 차마 ‘인간’이라고 간주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흉악범들에게는 경칭을 붙여주는 반면에 무고한 일반 시민에게는 똑같은 혜택을 주지 않는다.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은 그냥 광야에 놓아두더라도 워낙 얌전하고 목소리가 작아 그냥 참고 넘어가기 때문인 모양이다.
CCTV가 “사생활을 노출시키고 침해한다”는 항변 또한 ‘씨’와 비슷한 논리처럼 보인다. CCTV를 미워하고 반발하는 사람들은 범죄자나 간첩처럼 그들의 행동이 ‘노출’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겠다. 반면에 부끄러울 바가 없이 정상적으로 정직하게 살아가는 무수한 사람들에게는 CCTV가 사회의 질서와 평화를 한 마리의 검은 양으로부터 지켜주는 막강한 첨단 보호 장치다. 그렇다면 반대론자들의 주장은 CCTV의 감시를 피해야 하는 한 마리의 양을 끝까지 존중하고 지켜주기 위해 평화로운 질서 속에서 살아가기를 소망하는 99마리 시민의 인권을 무시해야 옳다는 논리일까?
예언적인 소설 『1984년』에서 CCTV 노릇을 하는 ‘큰형(Big Brother)’의 개념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지금은 ‘시대착오’적인 허점을 여기저기 드러낸다. 현대 21세기 초반에는 조지 오웰이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양상들로 인해서 인간 집단을 관찰하고 분석하는 기준과 표본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1984년』은 본디 공산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작품이었다. ‘큰형’은 스탈린의 독재를 상징하는가공의 인물이다. 그러다가 사회주의 종주국이 봉건적인 계급 사회를 개혁하려는 실험 끝에 무너지기 시작했다. 시대의 구조적인 흐름과 ‘계급’에만 지나치게 많은 신경을 쓰고 인간 본성의 경쟁 본능을 간과한 착오 때문이었다.
그러자 소설과 거기에 담긴 이념 비판은 그대로인데 독자들의 해석 방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인구가 엄청나게 증가했던 탓이다. 세계 인구는 『1984년』이 출간된 1949년에는 아직 30억에 미달했지만, 2011년 10월에 두 배가 넘는 70억으로 늘어났다. “두 배로 늘었다”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심각성이 얼른 이해가 안 가겠지만, 필자는 그 변화를 피부로 느낀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인 1949년의 서울 인구는 150만 정도였는데 지금은 1천만이 넘는다. 물론 서울의 면적이 같은 기간에 많이 넓어지기는 했지만, 산업화 시대 이전에는 강남이나 우이동이나 화곡동이나 구파발 지역은 인구 밀도가 지극히 희박한 허허벌판과 같았다는 사실 또한 감안해야 한다.
어쨌든 필자는 마포구 공덕동 434번지 지하철 공덕역 2번 출구가 뚫린 바로 그 자리에 살면서 자치기를 하고 제기를 차고 연을 날리며 전찻길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화재를 신고하는 번호 119는커녕 아예 전화 자체가 귀했던 당시에는 5층 정도 높이의 광화문 소방서 망루에서 근무자가 사주경계를 하다가 어디서 연기가 피어오를 때마다 화재의 규모와 심각성을 연기와 불길의 모양으로 대충 판단하고는 4대문 밖까지 불자동차를 출동시키고는 했다. 5층이 넘어 시야를 가로막는 고층 건물이 서울에는 8층짜리 반도호텔 하나뿐이어서 가능했던 ‘옛이야기’다.
끊임없이 인구가 폭발을 거듭하는 사이에 인류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과학 문명이 일취월장을 계속했고, 그와 더불어 범죄와 사회악이 덩달아 장족의 진화를 이루었다. 이제는 소방서 망루 대신 수많은 인공위성이 우주 공간을 떠다니며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는 바람에 남태평양 무인도에서부터 남극에 이르기까지 낭만적인 신비의 공간은 거의 다 사라졌다.
물론 인권 의식 또한 세상을 보는 시각을 크게 바꿔놓았다. 그리고 언론인들뿐 아니라 젊은 작가들 또한 현재의 기준으로 과거를 분석하여 비판하는 역시대착오적인 실수를 서슴지 않는다. 인구 증가로 인한 대형 사회의 탄생을 거쳐, 동시에 정보를 공유하는 범세계적 통신 체제와 역학적 통제 수단이 구축되고, 그래서 개별적인 국가의 독립된 통치가 불가능해진 시대에 소수의 인권이 최우선이라는 사상은 이제 지나치게 낡은 개념이 되었다.
어느 외딴 시골 마을에 악당이 나타나면 선당이 칼을 차고 찾아가서 결투를 벌여 정의를 수호하던 과거의 방식은, 인공위성과 첨단 통신 수단을 한껏 활용하는 지금의 전화 사기범 시대에는, 그리 효과적인 대처 방법이 아니다. 기다리는 시내버스가 정확히 몇 분 후에 도착하리라고 정류장 전광판이 고자질을 해주는 세상에서는 마셜 맥루한의 첨단적인 도발 미학 또한 피터 막스(Peter Max Finkelstein) 상업 광고의 차원으로 빛을 잃는다.
인터넷에서 남용되는 표현의 자유와 CCTV 인권 논리는, 사회를 파괴하려는 비인간적인 소수 집단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죄 없는 수많은 시민의 권리와 자유를 희생시킬 특권을 누리려는 명분을 정당화할 통계학적 근거가 부족하다. 유사한 논리를 제시한다면, 다수의 기득권이 ‘갑질’을 해가면서 소수의 권리를 침해해서는 물론 안 되겠지만, 평생 피땀 흘려 구축한 기성세대 시민들의 기득권을 일방적으로 침해하겠다는 ‘소외층’의 위협 또한 옳지 않은 경우가 많다. 평등권을 요구하는 소수의 혁명은 흔히 장기간에 걸친 헌신적인 노력의 양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최소한의 노동에 대하여 과분한 대가를 요구하려는 불평등한 논리에 기초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이다.
소수의 진리보다는 다수의 진리가 분명히 중요하고, 집단 사회의 공익을 위해서는 소수 우선의원칙은 별로 바람직하지가 않다. 물론 진보와 혁명은 소수의 저항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지만, 우리 사회의 일부 언론은 길을 벗어난 검은 양의 소수 의견과 선동을 대변하는 논리가 지나치게 강한 듯싶은 인상을 준다.
이것은 물론 인권 개념에서 퇴보하자는 제안이 아니라, 다수결 민주주의라는 정(正, thesis)과 군중 광장 정치의 결함을 제거하려는 반(反, antithesis)이 이제는 낡아빠진 충돌의 권태기를 벗어나 새로운 합(合, synthesis)으로 발전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는 사견의 피력이다.
상식을 벗어난 99:1 우화에서 드러난 모순을 수정하려는 듯 어떤 종교인들은 양치기가 99마리를 들판에 버려둔 것이 아니라 안전한 곳에 데려다 놓은 다음에야 나머지 한 마리를 마저 찾으러 나섰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99마리를 위험하게 방치했거나 버렸다는 뜻이 결코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양떼의 주인은 박애 정신을 발휘해서가 아니라 한 마리의 양이나마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이기적인 계산에 따라 돌아갔을 뿐이다. 주인에게 야단을 맞지 않으려고 양치기가 돌아갔다는 어떤 목자들의 가설 또한 양을 구원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의무감이나 두려움에 쫓긴 행위였다는 의미로 풀이해야 옳겠다. 이렇듯 변명을 위한 꼬리표를 너무 주렁주렁 많이 붙이다 보면 본디 의미 자체가 희석되어 무의미해지기가 일쑤다.
자칫 부정확하고 엉뚱한 결론으로 빠지기 쉬운 용두사미 화법의 부정확한 전달 방식과 교묘한 발언은 이렇듯 분석하는 개인적인 시각에 따라 문맥상의 의미가 달라지면서 진실을 호도한다. 루카 복음서의 ‘비유’를 상징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직설적인 언급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오해의 잠재성이 오락가락 넘실거린다.
뿐만 아니라 상징성을 해석하는 이기적인 어떤 가능성이 모호한 빈틈을 파고 들어가 편파적 고정관념을 유일하고 확고한 사실로 각인시키려는 불순한 의도가 끼어들어 작용한다면. 순진한 대중은 착각의 미학과 수사학에 현혹되어, 그들의 서투른 감동은 선동의 제물이 되기 쉽다. 표현의 정확성이 흔들리면 언론의 영향력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이유다.
언젠가 언론에서는 조류 독감의 명칭을 행정 시책에 따라 AI라고 순식간에 바꾸었다.축산 농가들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AI(avian influenza)는 ‘조류 독감’이 맞다.AI라고 하면 일반인들이 알아듣기 어려운 영어 약자여서 소비자들이 마음 놓고 닭과 오리를 열심히 소비하리라는 계산에 따른 조처였던 듯싶다. 그렇지만 그런 편파적인 공식 결정은 결과적으로 다수의 시민을 기만하려는 시도나 마찬가지라고 여겨진다.
조류 독감을 애매하게 AI라고 ‘개명’해서 질병의 성격이 달라졌을 리가 없고, 소비자들의 경계심 또한 별로 누그러지지 않았다. AI 명칭의 채택은 그냥 일부 집단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언론과 정부 당국이 국민 대중으로부터 질병의 진실을 숨기려는 서투른 은폐 행위가 된 셈이다. 2014년 12월 28일 성남의 모란민속장에서 AI 병원균이 발견되자 50년 만에 처음으로 연말 5일장을 아예 휴장하는 결정을 내려야 했던 까닭은 조류 독감을 아무리 AI라고 포장해도 진실의 핵심이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동지들과의 한통속 소수 의견 차원에서만 머무르는 개인들의 역사의식이 과연 권위와 책임감을 얼마나 수반하는지 알 길이 없는 풍토에서라면, 오히려 통계적 다수결의 견해를 대변하는 방식의 부분적인 수용이 모순을 피하는 요령으로써 어느 만큼은 바람직할 듯싶다. “그는 폭력을 밥 먹듯 휘두르는 나쁜 사람이다”라고 언론이 구체적으로 지적하며 심판하는 대신 “경찰의 수사 결과를 확인해 보니 용의자는 이웃 사람 여섯 명을 3년 동안 갈취했다고 한다”는 식으로 남의 말을 사실 그대로 인용하면, 독자는 “거 참 나쁜 놈이구나”하고 자연스럽게 판단한다.
실상을 소상히 투명하게 보도하고, “이런 때려죽일 놈들”이라며 손가락과 삿대질 비판은 하지 않는 신중함을 제대로 발휘하여, 매체와 언론인이 감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분노를 독자의 몫으로 돌리면, 오히려 더 강력한 효과가 나타난다. 이 한 가지 기본이나마 잘 지키려고 노력만 하더라도 언론의 공평성 유지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사소한 원칙을 무시하고 안 지키면 바늘도둑이 소도둑 언론으로 성장하기가 쉽다. 그러면 결과적으로 단순히 나쁜 소식보다는 당파싸움의 정신을 이어받은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편파 보도가 “보기 싫은 뉴스”와 “지겨운 언론”이라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주동력으로 작용한다.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사이비 언론이 구가하는 표현의 자유는 정의를 진정으로 도모하는 행위가 아니어서, 거짓말을 미화하는 질병만 조장할 따름이다. 평형과 정을 잃고 한 쪽으로 치우쳐 선전이나 선동에 열중하는 ‘정통’ 언론 보도의 편협한 행태 역시 마찬가지 부작용을 낳는다.
린다 엘러비가 언급한 “어려운 선택”은 어떤 나쁜 소식이 과연 소수의 얘기면서 동시에 보편성을 갖추었느냐 여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경고인 셈이다. 다양하고 복합적인 사회에서 자나 깨나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취향 및 이념적 목적에 맞춰 한가지 병적인 양상만 부각하는 폭군적인 매체들이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