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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대산청소년문학상 예심 심사평
글쓴이 : 운영자 날짜 : 11.07.11|조회 : 14515

 
시 부문
 



대산청소년문학상은 글을 쓰고 싶은 꿈을 가진 중, 고교생들에게는 매년 손꼽아 기다리는 축제일 것이다. 전국에서 몰려든 응모작에서 그 마음을 바로 짐작할 수 있었다. 19회째를 맞는 올해, 시 부문에는 648명(중등부 80명, 고등부 568명)이 응모를 했다. 이 많은 응모작들을 읽는 시간은 한 마디로 ‘초록’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작품들은 연두에서부터 진초록까지 닮아 있지만 모두 조금씩 달랐다. 읽는 시간이 즐거웠던 만큼 보다 세밀하게 심사를 진행했다.

 

전반적으로 응모작들은 고른 수준을 보여주고 있었다. 중등부는 일상생활에서의 느낌을 솔직하게 담아낸 순수함이 돋보였다. 고등부는 개인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관심과 고민을 보이는 작품들이 많았다. 반면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눈에 띄게 아쉬웠던 점은 ‘배운 흔적’이 너무 많았다는 것이다. 훈련을 받는다는 데 문제가 있지는 않다. 기본을 알기 위해서는 배울 수 있다. 시도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시는 영어가 아니다. 글은 ‘쓰는 요령’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생각하는 다양한 방법을 배웠으니 자기만의 시선과 자기만의 표현을 만들어보는 것, 그것이 시다. 잘 다듬어진 시가 좋은 작품이고, 좋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비유적으로 말한다면 똑같은 라면이 아니라 치열한 고민을 통해 새로운 라면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잘 만들어진 시보다는 자신들의 생각과 고민을 솔직하고 치열하게 쓴 작품들에 심사위원들의 눈이 간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

 

예심에서 가장 중요하게 본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자신의 목소리인가. 둘째, 새로운 시선인가. 셋째, 치열하게 오래 생각했는가. 그러므로 아무리 잘 쓴 시라도 자신의 목소리라기보다는 그렇게 써야한다는 모범답안 같은 시는 배제했다. 거칠고 조금 부족해도 자기만의 시선이 들어 있는 시를 뽑았다. 다른 사람과 다르게 보고, 다른 사람들은 무심하게 지나치는 것에 눈길이 머물고, 그런 것들을 오래 생각할 때 좋은 시가 나온다. 응모자들은 그러했는가를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해보면 좋겠다.

 

여전히 시에 대한 열망이 뜨겁다면, 더 엉뚱하게, 더 새롭게, 더 재미있게 뛰어올라보길 바란다. 초록의 나이는 그런 것이 힘이다. “누구니?/콩이다!/뾰족한데?/새싹이다!/언제 클래?/지금!”이 전문인 이 작품은 이근화 시인이 쓴 동시 ｢콩｣이다. 사방이 꼭 막힌 콩을 뚫고 연한 새싹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언제 클래?”라고 물을 때 경쾌하고 씩씩하게 “지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에서 나온다. 다른 것을 믿지 말고 몸 안에 가득한 초록의 힘을 믿으면 된다. 내년부터는 더욱 더 새로운, 더욱 더 초록다운, 청소년들의 시를 보기를 기대한다. 물론 내내 응원한다.

 

소설 부문

소설은 착해야 하는가.

 

심사평을 쓰며 생각한다. 내가 읽은 소설에서 몇 사람이나 죽었을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차에 치어, 암에 걸려, 추락해서 목숨을 잃었는가. 그들 중 몇 사람은 간신히 목숨을 부지해 식물인간으로 남았고 몇은 치료비가 없어 죽어가고 그들을 간병하던 어머니는 집을 나가며 그 자식은 편의점 알바를 전전하다 또 다시 사건에 휘말린다. 형을, 동생을, 어머니를, 아버지를, 하다못해 삼촌이라도 죽여야만 진행되는 이야기들.......평범해 보이는 아이들은 그 평범함 때문에 이지메를 당하거나 그를 피해 전학을 가고 남은 아이들은 죄책감에 시달리다 엉뚱한 사고를 친다. 모든 선생님들은 비겁하며 아버지들은 취하고 주먹을 휘두르고 그럴 기운조차 없는 허약한 이들은 조용히 집을 떠나 사라진다.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들은 아예 전 지구적, 우주적 주제를 선택한다. 외계인이 침범하거나 유성이 충돌하거나 인공지능의 로봇이 지배하는 깔끔하나 새롭지 않은 이야기들.

죽음이, 사라진다는 것이 다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사람이 행복해야하는, 이른바 착한 소설을 써야한다는 말이 결코 아니다. 다들 아는 바, 소설이란 인물이 진행하는 이야기이다. 인물과 인물, 인물과 제도, 인물과 사회의 갈등을 다루는 이야기다. 인물이 살아야만 이야기는 설득력을 얻게 되고 비로소 감동이 생겨난다. 인물은 어찌해야 살아나는가. 다양한 전술이 있겠으나 가장 기본적인 사항은 이렇다. 작가가 인물에 애정을 가져야한다는 것. 내가 그린 인물이 그 안에서 숨 쉬고 움직이고 살아가는 동안 작가는 그 인물의 행동하나, 일련의 사고방식에 대해 지극한 사랑을 가져야만 한다.

선천적으로, 혹은 기질적으로 삐뚜름한 사람, 파괴적 성향의 작가라 할지라도 이 기본 요건은 달라지지 않는다. 애정과 증오는 사실 한 몸이므로. 정성을 기울인 인물을 죽인다면, 죽여야만 했다면 그에 걸맞은 까닭이 있을 것이며 그것이 올바로 구현되었다면 그 죽음은 독자를 움직이게 된다. 사회 통념, 윤리 규범과 충돌할지라도 그 자체의 정당성을 얻을 수 있다면 그 소설은 선한 것이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목에 힘주고 썼지만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다. 어째서 죽였는가, 죽여야만 했는가, 심각하게 고민해보시라는 말씀.

태어나 자라면서 우리는 많은 금지에 대해 알게 된다. 어머니들은, 혹은 선생님들은 우리에게 훈계하기 위해 거기 있는 양 이러저러한 일은 하지 않아야한다, 또는 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가르친다. 그 훈계와 훈계 사이, 금지와 그 사이의 통로에서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며 나이 들고 자라난다. 그 통로가 급격히 좁아지고 압박감에 숨 쉴 공간이 없다고 느끼며 중학교, 고등학교시절을 지난다.

사람이란 좀 이상한 존재여서 금지가 많아지면, 압박이 심해지면 역설적으로 내 안에 살아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가며 그 공간이 남보다 넓은 사람, 깊이가 있는 이들이 소설을 쓰고 시를 쓴다. 좋은 작가는 스스로 그 공간을 키우고 넓히는 사람이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좋은 문장, 잘 짜인 구성을 고민해야 하지만, 그러나 그보다 먼저 왜 나는 이 이야기를 쓰는가, 대체 이 이야기는 내게 무엇인가, 이 이야기는 과연 내게 진실한가, 나를 움직이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한다. 그 다음 고민은?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는 과연 어떠할까, 하는 문제이다.

아시다시피 소설을 쓴다고 해서 금지가 사라지지 않으며 압박이 덜해지지도 않는다. 긴장은 오히려 고조되며 숨쉬기는 더욱 어려워질지도 모른다. 어느 한순간 세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고 내 자신의 자의식에서 놓여나지지 않는 일.......그러나 그 안에서 비로소 역설적인 자유를 찾는 것, 소설이란 그런 것이다. 그렇게 써나간 소설이 좋은 소설, 착한 소설이다. 좋은 소설을 읽을 때 우리가 감동하는 건 그 작가가 스스로를 얼마나 괴롭혔나 느껴지는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