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8회대산문학상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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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산문학상 제정의 뜻

대산문화재단은 “국민교육진흥”과 “민족자본형성”을 창립이념으로
교보생명보험주식회사를 설립한 대산 신용호선생의 뜻에따라
교보생명보험(주)의 출연으로 창립되었다.

문학은 보편적 문화가치의 척도이자 한 민족의 정신적 뿌리이다.
또한 민족의 삶과 사상과 역사의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대산문화재단은 “국민교육진흥” 이념구현의 연장선상에서
“민족문화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여 대산문학상을 제정한다.

대산문학상은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부문에서
한국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뛰어난 작품을 선정,
시상하는 작품성 중심의 종합문학상이다. 대산문학상 상패

대산문학상의 지향점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문학상

대산문학상은 우리 문학 창달과 한국문학의 세계화에 기여하는 데 그 뜻을 두고 있는 종합문학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상을 지향한다.

인사말씀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신창재  제28회 대산문학상 시상식에 참석해주신 수상자 및 내빈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지난 한 해 한국문학의 성과를 확인하는 자리에 참석해주신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아울러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코로나바이러스-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올해 시상식을 예년처럼 많은 분들을 모시지 못하고 최소한의 인원으로만 진행하게 된 점 널리 해량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오늘 시상식을 유튜브로 생중계하고 있다 하니 오늘 함께하지 못하시는 분들은 온라인으로 시청하며 아쉬움을 대신하시면 좋겠습니다. 내년에는 시상식이 꼭 이전의 모습을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 모두는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인하여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초유의 상황 속에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유례없는 혼돈과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 속에 살면서 한편으로는 뉴노멀이라는 이름 아래 비대면의 일상화와 엄청난 속도의 디지털 혁명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예측하기 어려운 이 변화는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를, 누군가에게는 더 큰 고통과 상실을 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변화를 피해 갈 수도 거부할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과 사람, 삶과 삶이 어우러지고 부딪치는 서사를 기록하고 그 불가해한 숨은 뜻을 찾고 통찰하는 문학의 역할은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해질 것입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 속에 정해진 올해 대산문학상 수상작들은 보통의 일상과 삶의 가장 근원적이거나 중요한 문제를 새로운 시각에서 천착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리고 한국문학의 탄탄한 저력을 확인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시집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장편소설 9번의 일, 평론집 서정의 건축술, 스페인어 번역서 Kim Ji-young, nacida en 1982(82년생 김지영) 등의 수상작들은 높은 완성도와 삶의 실체에 밀착한 시선 그리고 전체를 조망하며 긴밀히 소통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이는 대산문학상이 지향하는 독창성과 보편성을 담보하는 동시에 한국문학의 건재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번역부문 수상작은 높은 번역수준뿐만 아니라 스페인에서 손꼽히는 저명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 보급되면서 현지에서 큰 호응을 얻어 세계인이 함께 읽는 한국문학이 되었다는 점에서 값진 성과라고 하겠습니다. 해당 부문에서 큰 성취를 이룬 네 분의 수상자께 마음 깊이 축하를 드립니다.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코로나19 대확산은 우리 일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으면서 불확실성에 놓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혼돈 속에서도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멈추지 않고 해내야 할 일들이 있지 않을까요? 이에 따라 대산문화재단은 직접적인 해외교류사업을 제외하고는 재단사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하되 대면과 비대면 두 가지 방식을 병행함으로써 본질을 지키면서 보다 많은 대중이 보다 쉽게 콘텐츠를 접할 수 있도록 노력하였습니다. 근대 한국문인들의 문학적 공과를 객관적으로 재조명해온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 문학제’와 교보인문학석강 등을 대면과 비대면 방식으로 병행함으로써 새로운 환경을 수용하면서도 본질적인 가치를 변함없이 수행하고자 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대산문화재단은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 속에 각 사업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독자대중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적절하게 제공할 수 있는 방법들을 꾸준히 모색해 나가겠습니다.

 이제 창립 30주년을 바라보며 대산문화재단은 안으로는 우리 문학과 문화적 역량을 향상시키는 한편, 한국문학과 문화가 보다 큰 틀에서 세계와 소통하고 다양하게 교류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변함없는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올해 수상작을 선정하기 위해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대산문화재단
이사장 신  창  재

식  순

  • 일  시 2020년 1126일(목) 오후 4시
  • 장  소 광화문 교보빌딩 23층 교보컨벤션홀

사 회 : 오은(시인, 제27회 대산문학상 수상자)

  • 개       식
  • 사       회
  • 경과보고 및 심사위원 소개
  • 사       회
  • 심사보고 및 수상작 발표
  • 김인환 평론가, 심사위원 대표
  • 인사말씀
  • 신창재 이사장
  • 시       상
  • 신창재 이사장
  • 수상소감
  • 수  상  자
  • 축       사
  • 유종호 평론가, 前 연세대 교수
    김사인 시인, 한국문학번역원장
  • 폐       식
  • 사       회

심사위원

(가나다순)

부문

본심

강은교 시인, 동아대 명예교수
김혜순 시인, 서울예대 교수
성민엽 평론가, 서울대 교수
염무웅 평론가, 영남대 명예교수
정호승 시인

예심

강성은 시인
김   언 시인
조강석 평론가, 연세대 교수

소설부문

본심

김영찬 평론가, 계명대 교수
김인환 평론가, 고려대 명예교수
서하진 소설가, 경희대 교수
오정희 소설가
정   찬 소설가

예심

김종광 소설가
소영현 평론가
정홍수 평론가
조해진 소설가

평론부문

김진희 평론가, 이화여대 교수
서경석 평론가, 한양대 교수
우찬제 평론가, 서강대 교수
최원식 평론가, 인하대 명예교수
황종연 평론가, 동국대 교수

번역부문(스페인어권)

권미선 경희대 교수
김현균 서울대 교수
송병선 울산대 교수
안드레스 펠리페 솔라노 소설가, 한국문학번역아카데미 교수
전기순 한국외대 교수

수상작 선정 경위

대산문학상은 한국문학의 세계화와 창작문화 창달에 기여하기 위해 1993년 제정하여 시, 소설, 희곡, 평론, 번역 등 5개 부문에 수상작을 선정, 시상하는 종합문학상입니다. 대산문학상은 연공 혹은 문단의 서열 등을 고려치 않는 순수 작품상으로 최근 1년 동안(2019년 8월~2020년 7월 *희곡, 평론은 지난 2년, 번역은 지난 4년간) 단행본으로 발표된 작품 가운데 문학성이 가장 뛰어난 작품을 선정하여 부문별로 시상합니다.

대산문학상의 전 부문 상금은 5천만 원입니다. 시상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희곡과 평론 부문은 격년제 심사를 시행하여 올해는 평론 부문을 시상합니다. 영어, 불어, 독어, 스페인어를 대상으로 어권 별로 시행하는 번역 부문은 올해 스페인어권 번역서를 시상합니다.

대산문학상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문학상으로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고유의 상패와 문장을 사용하고, 수상작의 홍보와 보급을 위해 수상자 낭독회 등을 진행하고 있으며, 수상작은 외국어로 번역하여 해당 어권의 유수한 출판사를 통해 출판, 보급합니다.

대산문학상의 심사는, 시 ․ 소설 부문은 예본심제로, 평론 ․ 번역 부문은 단심제로 운영하되 충분한 독회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난 5월부터 10월까지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시ㆍ소설 부문의 예심은 지난 5월부터 8월까지 3개월 여간 진행되어 부문별로 본심대상작을 선정하였습니다. 전 부문에 걸쳐 진행된 본심은 예심 결과를 토대로 부문별로 약 3회의 심사회의를 가졌습니다. 한국문학을 대표할 만한 우수한 작품을 수상작으로 선정하기 위해 격의 없는 토론과 투표를 거친 끝에 지난 10월 말 4개 부문의 수상작을 결정하였습니다.

이렇게 선정된 수상작은 소정의 확정절차를 거쳐 오늘 시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제28회 수상작 소개

부문
시부문 수상작
수상작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김행숙
김행숙 - 1970년 서울 출생
- 고려대학교 국어교육과 및 동대학 국문과 대학원 졸업
- 강남대학교 한영문화콘텐츠학과, 문예창작대학원 교수
- 1999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 2009년 노작문학상, 2015년 전봉건문학상, 2016년 미당문학상 등 수상
- 시집 사춘기 이별의 능력 타인의 의미 에코의 초상 1914년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
며칠 전에 핸드폰이 저에게 알려준 일일(一日) 걸음 수는 80보였습니다. 대문 밖을 나가지 않았다는 뜻이지요. 2020년은 그런 날이 많은 해였습니다. 겨울, 봄, 여름이 지나갔고, 가을에서 겨울로 지구는 태양을 한 바퀴 돌아 2020이라는 연도를 달력에서 지울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기억 속에서 이 숫자는 오랫동안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2020년 이후’, 다시 말해 ‘코로나 이후’의 미래 시간에서 계속 이 시간은 호명될 것입니다.

‘이후의 시간’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의 시간으로는 결코 돌아갈 수 없어진 것입니다. 세계사나 한국사 같은 거시적인 시간 지평에도 그런 ‘이후의 시간’들이 역사적 굴곡을 만들어 왔지만, 한 사람의 인생 안에도 각자의 ‘이후의 시간’들이 새겨져 있을 테지요. ‘이후의 시간’이 단지 현재를 미래로 연장한 시간일 수는 결코 없지만, 이후의 미래를 예감하는 일은 현재를 강렬하게 겪고 느끼고 사유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가 진짜 모르는 것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재의 수수께끼에 깊숙이 발을 들여놓아야 얼마나 많은 시간의 가능성들이 펼쳐져 있는지 헤매볼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 수상소감을 쓸 생각은 당연히 아니었습니다. 쓰다 보니 이리 되고 말았습니다. 얼마 전부터 저는 막연히 ‘2020년 이후’라는 시간에 시가 붙들리게 될 거라는 예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 생각은 대산문학상 수상 시집이라는 무거운 영광을 얹게 된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를 정리하던 중에 찾아왔습니다. 2020년 여름이었던 것이지요. 더 정확히 말하면, 시집에 수록된 시 가운데 시간적으로 가장 마지막 시편을 쓰던 중에 불시에 엄습하였던 생각입니다. 문학상은 ‘이미 쓴 시’에 주어지는 것이지만, ‘아직 쓰지 않은 시’를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쓴 시가 아니라, 앞으로 쓸 시, 달리 말하자면 현재의 시적 예감을 들여다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무겁고 두렵기도 합니다. 쓰지 않은 시를 어떻게 내다보고 또 살필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후의 시간’이 현재의 의문 속에서 펼쳐지듯, ‘이후의 시’ 또한 언제나 시적 현재의 몸을 통해서만 언뜻 드러나는 것이니, 다만 시적 순간들에 한층 더 깊어질 것, 시의 현재에 최대한 성실할 것, 제가 할 바는 그뿐일 것입니다. 문학적 격려와 당부가 담긴 이 상의 의미를 잘 헤아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할 분들이 많고, 나눌 기쁨이 큽니다.

본심 심사평

본심에 선택의 폭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까지 숙고했다는 예심위원들의 고마운 마음 씀과 유관할 터인데, 본심에 오른 10권의 시집은 여러 측면에서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고전적 언어에서 실험적 언어까지, 명쾌한 시부터 몽롱한 시까지, 시인의 연배로는 1954년생부터 1988년생까지. 이들이 저마다 다른 모습, 다른 방식으로 자신만의 성취를 이루고 있음에 우리는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외견상 눈에 띄는 점으로는 10권이 전부 이른바 메이저 문학 출판사 네 군데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중 한 출판사에서 나온 4권이 전부 여성 시인의 것이고 나머지 6권은 전부 남성 시인이라는 점을 지적할 수 있는데, 이것이 우연한 결과인지 아니면 어떤 편향성을 암시하는 것인지는 분명치 않다.

우리는 10권을 놓고 각자의 독후감을 개진한 뒤에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토론은 확실히 유익했다. 토론을 통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할 수도 있었고, 또한 다른 사람의 견해에 공감하여 자신의 의견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그런 뒤 투표를 통해 4권의 시집을 남겼다. 우리는 이 4권을 한층 더 자세히 읽기 위한 시간을 가진 뒤에 다시 모였고, 전과 같은 방식으로 토론을 진행했다. 이 토론에서 나온 의견들을 시집 별로 간략히 정리하여 시인의 나이순으로 배열하면 다음과 같다.

고형렬의 오래된 것들을 생각할 때에는은 일상적 언어의 시적 활용이 뛰어나고 동양적 사유가 돋보이며 현실 세계에 깊이 들어가는 자세가 감동적이다. 인식의 논리성과 보편성이 긍정적인 시적 효과를 가져올 때 고전적인 언어의 명쾌한 시가 어떤 성취를 이룰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조용미의 당신의 아름다움은 정신주의적 깊이와 집요한 몰입의 자세가 돋보인다. 완성도가 높고 안정적이어서 완결미의 편차가 별로 없고, 경쾌와 위트를 통해 생겨나는 힘이 독자와 소통하는 힘을 증진시키면서 시 읽기를 고통스럽지 않은 즐거운 체험으로 만들어준다.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는 고통의 삶에 대한 반추, 미래를 향한 열기 등의 주제의식이 탁월한 리듬감과 결합하여 완성도 높은 시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인유의 시집이라고 불러도 될 만큼 인유를 전면적으로 사용하며 인유의 시적 가능성을 한껏 밀고 나갔는데, 그 성과가 훌륭하다고 생각된다(특히 많이 인용되는 카프카는 늦은 발견이 아니라 재발견일 것이다).

신해욱의 무족영원은 환유의 언어를 전면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은유의 언어에 익숙한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지만, 당돌하고 발랄한 이미지와 리듬이 그 자체로 힘을 발휘하면서 수행하는, 인간 중심을 벗어난 주변의 존재성 자체에 대한 탐구가 주목된다. 실험적인 언어의 몽롱한 시로서 하나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토론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시집이다.

이 토론 뒤에 두 번째 투표를 통해 2권의 시집이 남았고 그 2권을 놓고 한 마지막 투표에서 김행숙의 무슨 심부름을 가는 길이니가 수상작으로 선정되었다. 이 선택은 김행숙의 시집이 고전과 실험 사이에서, 명쾌와 몽롱 사이에서 나름의 균형을 잘 이룬 것과 일정한 관련이 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시인에게 더욱 큰 발전이 있기를 기대한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성민엽 염무웅 김혜순 강은교 정호승

예심 심사평

한 해 동안 출간된 시집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예심에서, 그리고 그간의 문학적 성과를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그 성취를 판단하는 작업에서 해야 할 일은 세 가지이다.

첫째, 지난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들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혹시라도 놓치고 만 시집이 없는지를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시 부문 심사에 참여한 세 예심위원들이 모두, 비단 이번 심사 때문이 아니어도 한 해 동안 출간된 시집들을 부지런히 읽으며 동시대 시단의 지형도와 성취를 부지런히 가늠해 보는 이들이라는 상호 신뢰에 기초해 모든 일정이 진행되었다는 점은 다행스럽다. 그 신뢰에 기초하면서도 심사위원들은 한 해 동안 출간된 시집의 목록을 꼼꼼하게 크로스체크하며 각자 30여 편 내외의 작품을 1차 심사대상 시집으로 제안했다. 1차 회의에서는 각자의 목록을 서로 비교하며 추천 사유와 제외 사유 등을 성실히 토론했고 그 결과 15권 내외의 시집이 2차 심사대상으로 결정되었다. 이때, 두 번째 업무, 즉, 그간의 성과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균일한 성취의 정도를 충분히 고려한다는 기준이 적용되었다. 이에 따라 이번 시집의 성취도와 더불어 해당 시인의 시 세계 전체의 성취와 변모 양상, 그리고 이번 시집의 변별적 성과 등을 고려하여 2차 심사대상을 결정했다. 또한 올해 7월 말까지 발표된 시집을 대상으로 한다는 원칙에 부응하기 위하여 1차 심사와 2차 심사 사이에 출간된 시집 중 추가 추천작이 있는 경우 상호 공유하고 사전에 이를 검토하여 만나기로 결정했다. 그 결과 4~5권의 시집이 추가로 추천되었으며 2차 심사 모임에서는 추가된 시집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3차 심사 대상 시집을 선정하게 되었다. 본심에 올라갈 최종 대상 시집들을 결정하는 3차 심사에서 우리는 개별 시집의 성취와 함께 시단의 다양한 흐름에 대한 고려 등을 논의하며 최종 대상 작품 선정에 임했다. 그리고 이때, 세 번째 업무, 즉, 본심 심사위원들에게 선택의 폭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까지 숙고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0권 안팎의 시집이 최종적으로 논의대상이 되었고, 놓치거나 치우치는 일이 없었는지를 다시 한번 점검하며 최종적으로 10권을 확정했다.

한 해 동안 발표된 시집을 일별하면서 심사위원들이 3차례에 걸친 심사 기간 동안 제시한 의견들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해보자면 첫째, 한국 시의 저변이 여전히 넓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건 한국시의 가능성을 확장시키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해볼 수 있겠다. 둘째, 세대를 막론하고 많은 시인들이 여전히 오직 시에만 몰두하며 고투하고 있다는 새삼스러운 놀라움을 적어두지 않을 수 없다. 여러 우려 섞인 전망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시는 여전히 놀랍고 불안한 고투를 품고 있다. 대산문학상이 그 고투를 기억하는, 소중한 정례적인 현장임을 수상자와 더불어 상기하고자 한다. 시에, 한국시에, 수상자의 시에 무언가가 걸려 있다.

예심위원 (왼쪽부터) 조강석 김언 강성은

소설 부문
소설부문 수상작
수상작9번의 일
김혜진
김혜진 - 1983년 대구 출생
- 영남대학교 국문과 및 서울예술대학교 문창과 졸업, 고려대학교 문창과 대학원 수료
- 201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 2012년 대산창작기금, 2013년 중앙장편문학상, 2018년 신동엽문학상 등 수상
- 소설집 어비 너라는 생활, 장편소설 중앙역 딸에 대하여 9번의 일
9번의 일은 일에 관한 소설이고, 이 소설을 쓰는 동안 제가 하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이 일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여전히 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쓰는 일은 항상 어떤 편견과 오해 속에 둘러싸여 있고, 저 역시 이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되는 동시에 무의미하고 보잘것없다고 여겨지는 순간이 많습니다. 혼자 하는 일이기에 혼자 힘으로 쓴다고 자신하는 순간이 있지만 제 의지와 각오만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사실도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쓰는 일은 항상 불안과 혼돈 속에서 치러지는 어떤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제가 만나게 된 세계가 이전보다 넓어지고 깊어지는 것만은 틀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쓰면서 제가 발견하고 깨우치게 되는 것은 저의 한계이고 바닥인 동시에 제가 수많은 것에 기대어 있다는 사실이고, 그것이 저에겐 큰 위로가 됩니다. 저라는 사람이 이 사회 속에 발을 딛고 세계와 관계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 때문입니다.

얼마간 벅차고 또 얼마간 부끄러운 마음으로 이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대산문화재단과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전합니다.
저의 생활이고 일상이며 오랜 친구 같은 이 일을 더 힘껏 사랑하라는 격려와 응원으로 새기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본심 심사평

올해 대산문학상 본심에 올라온 소설은 강영숙의 부림지구 벙커X, 김혜진의 9번의 일, 손홍규의 파르티잔 극장, 은희경의 빛의 과거,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최진영의 이제야 언니에게 등 총 6편이다. 이 소설들은 올 한 해 한국 장편소설의 성과를 대표하는 작품들로서 역사, 노동, 여성, 재난, 기억 등 다양한 스펙트럼에 걸쳐 풍부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펼쳐 보여주고 있었다. 이 소설들을 검토하면서 우리는 최근 장편소설이 현실의 문제에 이전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형식적으로는 점점 볼륨이 축소되거나 경량화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본심 위원들은 이를 공유하면서 이 여섯 편의 소설을 놓고 2차에 걸쳐 심도 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오랜 시간 논의를 했음에도 각각의 소설들에 대한 심사위원들의 의견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고 그런 만큼 토론 과정도 격렬하고 치열했다. 본심에 오른 소설들이 모두 나름의 뚜렷하고 고유한 장점을 지니고 있어 그 무게와 가치를 한자리에서 견주고 따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기 때문이다.

토론과 투표를 거치면서 마지막에 남은 작품은 강영숙의 부림지구 벙커 X와 김혜진의 9번의 일이었다. 부림지구 벙커 X는 묵시록적 재난의 세계를 실감나게 그리면서 그 속에서 생명의 가치와 인간다움의 근거를 진지하게 묻는 소설이고, 9번의 일은 삶을 파괴하는 노동의 역설을 냉정하게 파고들어가는 소설이다. 강영숙의 소설은 재난 상황에 대한 설득력 있는 디테일과 캐릭터의 생동감이, 김혜진의 소설은 노동의 양면성을 천착하는 흡인력 있는 이야기의 매력이 장점으로 지적되었다. 물론 두 소설 모두 어느 면에서는 작위성의 문제를 시원하게 벗어나지 못했다는 약점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어느 소설이 독자를 더 설득시켰는가의 문제일 것이다. 9번의 일은 결말의 부자연스러움과 장편으로서 볼륨의 부족함이 약점으로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삶의 근간인 노동의 문제를 통해 참혹한 삶의 실체를 파헤치는 냉철하고 집요한 시선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수상작은 결국 지난한 토론과 우여곡절 끝에 투표를 통해 결정되었다. 수상자에게는 축하를, 본심에 오른 작가들에게는 경외와 격려를 드린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김인환 정찬 김영찬 오정희 서하진

예심 심사평

대산문학상 소설 부문 예심 심사는 예년과 마찬가지로 2019년 8월부터 2020년 7월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을 대상으로 6월부터 8월에 걸쳐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긴 시간을 두고 심사가 이루어지지만 7월에 출간된 작품들까지 심사 대상에 포함해야 하는 일정이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대면, 비대면 방식을 섞어가면서 3차례에 걸친 예심 심사를 마쳤고, 본심 대상작 6편을 확정하였다.
심도 깊게 검토해야 할 대상 작품을 선정하는 자리에서 주요한 논의 내용은 대산문학상의 심사대상인 ‘장편소설’의 성격에 관한 것이었다. 신작 등장 주기에 속도감이 붙고 장편소설의 길이가 짧아지는 추세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미디어 테크놀로지의 진화나 출판시장에 새롭게 부상한 독자층과도 무관하지 않은 경향으로, 최근 다양한 길이와 판형으로 출간되는 소설은 장편소설의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향후 ‘장편소설’의 범주 설정에 대한 좀 더 심도 깊은 논의가 요청된다는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한 논의를 전제로 이번 심사에서는 다양하게 시도되는 ‘경장편소설’ 시리즈 출판물 가운데 분량 제한을 두면서 심사 대상의 범위를 조율하였다. 이른바 시리즈라는 명칭 때문에 ‘짧은’ 장편소설 전부를 심사 대상에서 배제하는 일방적인 방식을 경계하면서, 대상작 선정에 있어 최대한 공정한 기준을 마련하고자 논의를 거듭하였다.

본심 대상작 6편은 강영숙 작가의 부림지구 벙커X, 김혜진 작가의 9번의 일, 손홍규 작가의 파르티잔 극장, 은희경 작가의 빛의 과거,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최진영 작가의 이제야 언니에게이다. 심사 기준에 대한 논의가 길게 이어졌다면 대상작 선정은 합의를 통해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 심사 대상작 가운데 어떤 작품이 영광의 수상을 하게 된다고 해도 이견이 없을 만큼 올해의 본심 대상작은 문학적으로 다채롭고 풍성하다. 한 편 한 편 어떤 경향성 속에서 선정된 것은 아니나, 6편을 두고 2020년 한국문학의 흐름의 면면을 고스란히 확인할 수 있어 의미가 깊다.
한국 문학계는 최근 크고 작은 사건들을 겪었다. 그간 관행으로 여겨왔던 문학적 풍경들이 비판적으로 검토된 2016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한국문학은 문학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에 직면해야만 했다. 한국사회 일반의 것이기도 한 남성중심주의적 성격에서 문학계도 예외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해야 한 시간이었지만, 흥미롭게도 고질적인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문제제기가 새로운 문학적 활기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본심 대상작을 통해 새롭게 들끓는 문학적 활기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최근 한국문학에서 재난을 소재로 한 작품의 등장이 늘고 있다. 본심 대상작을 통해서도 이러한 추세를 만날 수 있다. 예외적인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재난과 재해를 피할 수 없는 시대이다. 당장 우리는 지난 반 년 동안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재난의 시간을 살아내는 중이다. 문학은 언제나 시대와 깊이 호흡할 수밖에 없다. 한국소설이 재난의 상황이나 생존의 문제를 두루 다루고 있는 것은 그 호흡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할 것이다. 들여다보자면 기후에서 문화적 폭력에 이르기까지 재난의 성격은 다양하고 복합적이며 해결 난망하다. 문학적 개입이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할 이유가 아닐 수 없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유례없던 비로, 예년과 같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우리는 기이한 시간을 하나 된 감각으로 겪어나가는 중이다. 따지자면 이번 심사가 예년과 마찬가지라는 말에도 보충 설명이 필요하다. 코로나 시대를 통과하면서 심사 과정에서도 비대면 형식의 진행을 피할 수 없었다. 문학 아니 일상에서 대면의 자리의 소중함을 새삼 되새긴 시간이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말하는 많은 전문가들에 의하면 우리는 이제 ‘예년과 마찬가지’ 식의 감각을 떠나보내야 할지도 모른다. 뉴노멀의 내부가 무엇으로 채워질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재난이 우리에게 잊고 있던 존재로 시선을 돌리게 하고 들리지 않던 소리에 귀를 열게 한다는 사실이다. 알다시피 그 존재나 소리가 있는 곳이 내내 문학의 자리였다. 재난이 우리에게 남긴 것들에 대한 깊이 있는 문학적 사유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한 작은 위로에서 큰 전망에까지 가닿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예심위원 (왼쪽부터) 소영현 정홍수 조해진 김종광

평론 부문
평론부문 수상작
수상작서정의 건축술
유성호
유성호 - 1964년 경기 여주 출생
- 연세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 국문과 대학원 졸업
- 한양대학교 국문과 교수
- 1999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
- 2007년 편운문학상, 2015년 팔봉비평문화상, 2015년 김환태평론문학상 등 수상
- 평론집 움직이는 기억의 풍경들 침묵의 파문 서정의 건축술,
저서 단정한 기억 현대시 교육론 한국 시의 과잉과 결핍
먼저 이 상을 제정하시고 아낌없는 지원을 해주시는 대산문화재단의 신창재 이사장님과 심사위원 선생님들, 그리고 어려운 여건에도 지금껏 문학을 함께해온 벗들께 깊은 감사를 올립니다. 대산문학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전화를 받고는 한참 동안 기뻤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찾아온 두려움과 영광스러움이 제가 비평을 오랫동안, 큰 슬럼프 없이, 참으로 열심히 해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래도록 대산문학상의 권위와 엄정성에 기대어 이 두려움과 영광을 간직해가겠습니다.

시 비평에 외래 담론을 이입하려는 속성이 늘어난 시대에, 저는 아직도 개개 시편을 정확하고 풍부하게 읽어내는 안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의 비평적 지남은 “시를 볼 줄 알아야 한다”라는 스승의 말씀에 새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설익은 논쟁보다는 충실한 독해와 예각적 해석을 겸비한 필치가 비평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 엄정하고도 단정한 ‘눈’과 ‘글’을 만들어가는 것이 비평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근대의 극점에 다가가면 갈수록 서정시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언어적 섬광을 발견하고 논리화하고 내면화하는 일은 더욱 긴요해질 것입니다. 그 비평적 검토와 해석을 이만큼이라도 쫓아온 것에 감사드리면서, 앞으로도 스스로의 언어를 단정하고 날카롭게 조율해가겠습니다.

서정시는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추구이며, 그 동시적 현재화이며, 언어적 대리구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동안 저는 그러한 경향을 보여준 시인들을 적극 옹호해왔습니다. 현실과 맞닥뜨려 그 접점의 긴장을 늦추지 않은 시인들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주목해왔습니다. 이러한 리얼리즘과 서정성의 통합과 길항이 우리 시의 중요한 미학적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 실물적 형상을 입혀 이번 서정의 건축술이 설계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책은 비평이 시를 둘러싼 반성적 자의식이자 미학적 추인의 소산이라는 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의식을 잃지 않고 맹목적인 수사적 포즈와 앞으로도 끊임없이 갈등하며 글을 쓰겠습니다.

문학의 힘과 꿈을 가르쳐주셨던 은사님들, 우리 한양대학교 동료 교수님들과 사랑하는 학생들, 그리고 가족들과 기쁨을 같이 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더욱 긴장하면서 읽고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심사평

오늘의 한국문학이 직면한 정치·사회·문화적인 급격한 변화를, 다원적인 관점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해석하고 현재적 의제를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경향의 비평을 최근 2년간 발간된 비평집들에서 만날 수 있었다. 첨단의 과학기술과 공존할 문학의 미래를 모색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윤리와 정치의 감각을 탐구하는 오늘 한국의 비평은 새로운 현실과 언어에 대한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질문과 대답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실천적이고 미래적인 의의를 충분히 지니고 있었다.

2020년 대산문학상 비평 부문 심사위원들은 새로운 비평의 동향에 주목하면서 오늘 문학 비평에 요구되는 덕목과 가치는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모아나가는 논의를 거듭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당대의 작품과 독자와 소통하는, 비평의 ‘당대성(當代性)’을 핵심 요건으로 하면서, 비평적 관점과 해석의 엄정성, 비평 문체의 심미성 등에 주목하여 김미현의 그림자의 빛, 백지연의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 유성호의 서정의 건축술 세 권의 평론집(저자 가나다순)을 최종 후보로 선택했다. 대상을 선정하는 논의 과정에서는 구체적으로 서구 철학과 문학이론 등에 대한 주체적이고 엄정한 수용, 작품에 대한 엄밀한 독서와 해석, 한국문학 전반에 관한 비평적 안목, 비평적 자의식과 독자적 목소리 등이 비평의 중요한 자질로 논의되었고, 각 비평집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이 모아졌다.

그림자의 빛은 비평문과 주제가 체계적으로 구성된 비평집으로, 최근 한국 문학의 변화에 대한 학문적 성찰과 풍부한 해석이 돋보이는 비평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만 비평의 이론적 틀과 개념이 작품 자체와 비평가의 문체와 개성을 종종 억압하여 아쉽다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사소한 이야기의 자유는 문학과 현장을 매개하는 실천적 비평을 보여주는 작품집으로, 특히 문학사의 연장선에서 오늘의 문학을 이해하는 비평가적 성실성과 안목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다만 비평적 관점과 목소리의 개성이 다소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서정의 건축술은 작품이 놓인 시단 전체의 지형을 조망하는 안목과 비평 대상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유려한 문장으로 평가를 받았다. 다만 문학이론에 대한 보다 정치하고 예각화 된 이해와 평가 역시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런 논의와 평가의 과정을 거쳐 심사위원들은 시단의 다양한 경향과 회통하면서 비평적 세계를 안정적으로 펼치고 있는 유성호의 비평집 서정의 건축술을 대상으로 선정했다. 비평집 서정의 건축술은 서정에 대한 원론적인 성찰과 문단의 동향, 작품론 등으로 구성되어 비평가의 문제의식과 전개를 차근차근 축조해 나간다. 유성호의 비평은 정확성과 심미성을 지향하면서, 비평의 현장성과 역사성을 두루 겸비하고 있다는 점에 심사위원들은 의견을 같이 했다. 특히 비평 대상에 스며들어, 서정의 본질과 작품의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의 글쓰기는 심사위원들에 의해 적극 평가된 유성호 비평의 개성이다. 수상을 축하드린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서경석 김진희 황종연 우찬제 최원식

번역 부문 (스페인어권)
번역부문 수상작
수상작Kim Ji-young, nacida en 1982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作)

주하선
주하선 - 1978년 서울 출생
- 한국외국어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서과 졸업
- KBS 국제방송 스페인어방송 작가
- 역서 Hija única(잘 자요, 엄마) Kim Ji‐young, nacida en 1982(82년생 김지영)
번역은 외로운 작업입니다. 꽤 오랜 시간을 번역가로 일하면서 그 외로움을 실감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실용 번역에 주력해서 더 외로웠던 것 같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저에게 있어 첫 문학 번역 도전이었습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였고 잘 해내고 싶었습니다.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텍스트를 읽고 또 읽기를 반복하며 알았습니다. 문학을 번역하는 작업은 좀 덜 외롭다는 것을. 인물의 감정과 상황에 나 자신을 대입하며 혼자 있지 않다고 느꼈고, 인물의 말을 가장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옮기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랍게도 제가 위로를 받았습니다. 아마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만나서 더 그랬던 것 같습니다. ‘김지영’의 삶과 제 삶 사이에 접점은 적지 않았고, 그래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으로서 ‘김지영’의 이야기를 알리고 싶다는 욕구와 사명감이 때때로 번역가로서 유지해야 하는 냉철함과 객관성을 이기곤 했습니다. 다행히 그런 역전의 순간들도 번역 작업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좀 더 가까이 ‘김지영’을 바라보고, 좀 더 친밀하게 그녀의 이야기가 담긴 텍스트를 읽어 나갈 수 있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은 현재 한국 문학에서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시대에 다시금 문학의 힘을 보여주었고, 여성의 이야기를 문학의 중심으로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같은 이유로 82년생 김지영은 한국을 넘어 세계 많은 곳에서 읽히고 있습니다. 스페인과 중남미도 그 많은 곳 중의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어서, 그리고 그렇게 되는 데 일말의 기여를 할 수 있어서 제 개인적으로도 매우 기쁘고 보람됩니다.
이번 수상은 저에게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의미를 갖습니다. 우선 이제 걸음마 단계에 있는, 아직은 부족한 점이 많은 문학 번역가인 저에게 이 상은 매우 커다란 영광이자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는 당부입니다. 감사합니다. 또한, 이 시점에서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으로 수상을 한다는 데 특별한 의의를 두고 싶습니다. 아마 한국의 수많은 여성 번역가들은 저와 같은 상황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정된 일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 가사를 담당하며 이와 동시에 번역에 매진하고 있을 것입니다. 사회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 여성으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82년생 김지영의 번역에 수여되는 본 상은 어쩌면 그 수많은 여성 번역가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번역하는 여성으로서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작품을 만난 건 큰 행운이자 운명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심사평

2020년 대산문학상 번역 부문(스페인어)에는 총 25편(고전 1편, 아동 2편, 시 4편, 소설 18편)이 심사 대상이었다. 지난 4년 동안 스페인어권에서 출판된 작품들로 알파구아라(Alfaguara)와 펭귄랜덤하우스, 알리안사(Alianza) 같은 저명 출판사의 참여가 두드러졌다. 또한 과거에 비해 번역 수준이 향상되었다는 점과 원어민 번역자가 다수 포함된 점 때문에 심사위원들은 고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1차 심사를 진행하였다. 기준은 원작의 문학적 완성도, 번역의 난이도와 번역의 질 그리고 출판사의 지명도 등이었으며, 해당 지역 독자들에게 미치는 “상업적” 가독성이 거론되었고, 고전을 제외하고는 이 기준을 높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 심사위원들의 공통된 견해였다. 그런 면에서 이 번역 작품들의 일부가 스페인어권 문학작품의 수준과 수용가능성을 고려하여 선정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으며, 국내 베스트셀러에 의존하기보다는 적극적으로 스페인어권에 맞는 작품을 발굴하려는 번역자들의 노력 또한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2차 심사에는 서미애의 잘 자요, 엄마(Hija única, 주하선 역), 한강의 (Blanco, 윤선미 역), 김경욱의 위험한 독서(Lecturas peligrosas, Alejandro Alderete 역), 최제훈의 퀴르발 남작의 성(El castillo del barón Quirval y otros relatos, Charo Albarracín 역) 그리고 조남주의 82년생 김지영(Kim Ji-young, nacida en 1982, 주하선 역)을 포함 총 5편이 상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빼어난 작품들이 번역의 흠결로 탈락한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1차 심사 기준에 번역자의 이력과 해외에서의 반응을 추가로 고려하여 82년생 김지영이 최종 후보작에 올랐다.

위험한 독서는 원작의 작품성이 뛰어나고 상대적으로 번역의 난이도가 높다는 데 심사위원들의 의견이 일치하였으나 원작의 변형이 적지 않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겼다. 원작의 난해성을 고려한다 해도 불필요해 보이는 첨삭 역시 적지 않아서 아쉬움을 더했다. 잘 자요, 엄마퀴르발 남작의 성의 번역은 커다란 결점은 없었으나 전반적으로 평이했고, 특히 퀴르발 남작의 성의 경우 원작의 강력한 유머감각을 살리지 못했다.

은 번역자의 이력과 신뢰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으나 원작의 시적인 문체를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심사위원들이 호감을 보였던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Flores de un momento, 서성철 역)은 생존 번역가의 작품만 수상할 수 있다는 규정에 묶여 2차 심사에 상정되지 못해 다른 측면에서 안타까움을 주었다. 82년생 김지영의 경우 원작의 작품성과 번역 난이도를 둘러싸고-번역 작업에서 난제가 될 만한 시적 혹은 지적 깊이를 동반한 문장이 많지 않다는 면에서-오랜 토론을 거쳤으나 뛰어난 가독성, 해외 독자들의 반응, 출판사의 지명도, 원작에 대한 충실한 이해 등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아 수상작으로 선정하였다. 이미 아시아를 지나 스페인어권 지역의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얻고 있는데, 여기에는 최근에도 이사벨 벌린과 바르가스 요사의 작품을 출간한바 있는 알파구아라 출판사의 영향력도 작용했다는 판단이다.

작품 선택에서 해외의 한 책방에 놓이는 순간까지를 더듬어보면서, 이 지난한 과정이 해외 독자의 손을 움직이게 하기 위함이라는 당연한 목적을 되새기면서, 심사위원들은 원작 선택의 중요성을 새삼스럽게 강조하며 심사를 마무리했다. 번역문학 읽기의 즐거움을 던져준 모든 번역자들께 감사드린다.

본심위원 (왼쪽부터) 안드레스 솔라노 김현균 권미선 전기순 송병선